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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논산의 어제이야기 아버지께서는 집을 떠나 다른 분들과 100여명이 밤마다 행진하여 대 전을 지나 옥천을 향해 가던 중 대열에서 이탈 하셨다고 했다. 그 후 평소에 알고 있는 길을 통하여 당시는 전라북도였던 금산군 복 수면 방향으로 오시다가 아는 집에 들러 밤을 지내시고 식전에 서둘러 벌곡면 도산에 오셔서 친구의 집에 들러 아침겸 점심을 대접받으시고 석양에 출발하여 벌곡 소재지를 지나 이곳 대목골에 당도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께서도 밥 대신 도토리묵으로 식사를 대신 하신지가 10여일 됐다고 하셨다. 나 역시 밥보다는 묵이 좋아 식사대용으로 묵을 먹게 되었다. - 아직 벼가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것을 미리 베어 찐쌀을 만들어 밥을 했기 때문에 밥맛이 좋지 않았고 또 산촌 지역의 쌀은 평야지대의 쌀에 비하여 차진 맛이 적기 때문에 밥이 거칠고 맛이 없다- 마침 이해 (1950년)에는 도토리가 풍년이었고 앞뒤 모든 산에는 도토리가 지천이 어서 2~3명이 하루 3시간 정도 도토리를 따와서 디딜방아에 넣고 찧 어서 묵을 만들면 온 식구가 2~3일 동안 풍부하게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오니 식량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였다. 그렇게 몇일 지났는데 하루는 인민군 패잔병들이 2~3명씩 들려서 일반 평민복을 달라고 해서 그걸로 갈아입고 떠나가곤 했다. 이렇게 몇일을 하다 보니 집에 남자 옷은 하나도 남은게 없고 입고 있는 것 밖에는 없게 되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패잔병도 오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해진 어느날(연산장날) 아버지께서 그곳 둘째 외당숙을 부르시더니 오늘 연산장에 가서 소식을 좀 듣고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오라고 하시며 가는 길에 길호를 연산까지 데려다 주라고 말씀 하셨다. 아침을 먹고 길호는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