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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69 6.25 전쟁 중인 1952년 12월에 군 징집영장을 받고 군대에 가게 됐다. 육군 제2훈련소를 거쳐 의무병과를 받아 군의 학교에서 6주간의 교 육을 받고 전방에 있던 15사단의 사단 의무중대로 갔다. 당시는 전투가 치열 했던 때였기 때문에 보병 사단에서는 ‘보충병 받 으나 마나’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사자가 많이 나왔었다. 사단 의무중대에도 부상병들이 꽉 들어찬 상태였고 상처를 돌볼 틈 도 없이 웬만한 병사들은 후방의 군 병원으로 후송조치 하는 상태였다. 엠블런스도 부족하여 군 트럭을 동원하기도 하고 이웃의 다른 사단 엠브런스를 빌리고 헬리콥터를 지원 받기도 해서 환자를 수송하기도 했다. 나는 운이 좋아 비교적 후방부대인 사단 의무중대에 있었기 때문에 살았지 나와 함께 갔던 사람들 거의 다 죽었다. 나는 휴전이 된 후에 전방에 있는 대대로 갔었다. 가보니 나보다 훨씬 선배 고참들도 전부 일등병 계급을 달고 있었다. 듣는 말로는 지리산 어디에선가 의무병들이 손을 씻지 않고 개인위 생을 더럽게 했다며 지휘관이 전부 강등을 시켜서 그렇다고 했다. 아무튼 그 고참들이 진급을 못하고 있으니 우리도 진급을 못하고 일 등병으로 33개월 만기제대를 했다. 나는 의무지대에서 약품을 취급했는데 거기에는 의무 장교인 소위 한사람이 있고 그 밑에 내가 있었는데 약품은 전부 영어로 표기 돼 있 어 나는 잘 알지도 못하고 의무장교의 지시에 따르는 정도였다. 1951년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를 하게 됐다. 이때 남한의 젊은이 들이 인민군에게 징집 되거나 의용군, 또는 부역 자 등으로 동원되어 적군화(敵軍化)되는 일을 막기 위하여 17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