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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 논산의 어제이야기 지나다녔는데 우리 같은 민간인이 세우면 서지 않고 군인들이 세우면 정지 했다. 우리들의 행색은 집에서 나온 지도 오래되고 하여 거지 중에도 상거지 모양이었다. 군인들이 차를 세운 틈을 이용하여 화물 짐칸의 짐 위로 기어 올라가 타긴 했으나 운전수가 나와서 전부 끌어 내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3~4회를 반복 하다가 겨우 차를 타게 됐는데 거기서 경오는 차를 타지 못하고 떨어졌다. 오다가 연산에서 내려 달라고 하니 내려 주고는 차비를 내라는 것이 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같은 거지가 무슨 돈이 있느냐고 했으나 막무 가내로 내라고 해서 결국은 한사람이 500원 씩 차비를 주고 걸어서 집 으로 왔다. 집에서 지난해 음력 섣달 초사흘(12월 3일) 집에서 떠나서 정월 스 무이렛날(1월 27일) 집에 들어왔다. 집에 오니 다들 죽은 줄 알고 있던 식구들이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당시 나는 거의 가죽과 뼈만 남았었고 온몸에는 이(虱)49) 가 너무 많 아 일일이 잡지 못하고 빗자루로 쓸어낼 정도였다고 어머니께서 두고 두고 말씀하셨다. 집에 와서는 또 가야곡면 중산리의 쌍계사 뒷산인 깃대봉과 과마니 고지에 가서 보초를 섰다. 처음에는 이 보초를 서면 군대 가는 것을 면제 해 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49) 이(虱) : 벼룩, 빈대와 함께 사람 몸의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 먹던 외부 기생충 1970년대 후반 쯤 개인위생이 좋아지고 세탁을 자주 해 입게 되면서 없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