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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51 를 설치하고 논산군당은 벌곡면 수락리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처음에는 벼를 현물세로 받아와 발동기 40)를 놓고 방아를 찧어 식량 을 조달하여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점점 전투경 찰들의 공격도 심해지고 당장 식량이 떨어져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절박 한 문제가 됐다. 처음에는 민가에서 돈을 주고 식량을 구하고 그 후에는 며칠 있다가 갚아준다며 식량을 빌리고 했으나 시일이 지나고 계속적으로 주변 마 을에서 식량을 구하다 보니 주변마을에도 식량이 없어 점점 먼 마을에 까지 나가 식량을 구하게 됐다. 처음에는 선의적으로 식량을 구했지만 갈수록 민심도 흉흉해지고 하 여 나중에는 식량을 강탈 하게 됐다. 이렇게 되니 국군측에서는 일종의 청야작전(淸野作戰)으로 마을을 비우고 마을을 전부 불태워 우리들의 식량 약탈을 원천봉쇄 하였으며 나머지 마을도 마을 주변에 지뢰를 매설 해놓고 산에서 지키고 있다가 우리들이 식량조달을 위하여 마을에 접근 하다가 인계철선을 건드려 지뢰가 폭발하면 그 지뢰 터진 곳에 대고 집중 사격을 하여 우리들의 인적 손실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국군, 전투경찰들과의 교전으로 죽는 사람들도 속출하 고 식량의 조달은 더욱더 어려워져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죽는 자들도 발생 했다. 40) 발동기 : 원래는 동력을 일으키는 모든 장치를 말하나 통상적으로는 시골의 정미소 등에서 동력을 일으키는 피스톤이 1개인 원동기를 가리킨다. 일제 강점기 이후 농촌의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가 이 발동기 방앗간으로 바뀌기 시작 하여 1990년대 중반 정도 까지도 유지 됐었다. 이후 농촌도 각 면에 1~2개소 정도의 대형 도정공장이나 RPC(미곡 종합처리장) 체제로 바뀌고 현재는 소형 정미소들과 함께 이 발동기도 다 없어져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