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page

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49 순경이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묻기에 고모님 댁에 갔다 온다고 대답하니 그 대나무는 왜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을철이라 벼논의 새를 쫒는데 쓰려고 가지고 온다고 대답하여 검문을 통과 한 적도 있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검속이 심해지고 하여 나는 집에서 피신하여 서울 등지를 떠돌면서 고물장수를 하기도 하며 지냈다. 19세에 이웃마을 처녀와 결혼하여 21살에 피신해 다닐 때 집사람이 애를 낳았는데 나는 애를 보지도 못했지만 젖이 부족해 애가 죽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과거 좌익 운동하던 사람들 중 전향 자들로 보도연맹 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좌익계통 사람들에 대한 전향 설득, 회유, 그리고 상황탐지 등을 했는데 나도 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그런데 6.25가 발발하자 이 보도연맹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예비 검 속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하여 논산의 경우는 강경역 앞의 일본이름 에 이메 여관 에 집단 수용하였다. 나는 피신하여 연행 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먹고 자는 대우도 상당히 잘 해주고 뭐 특별히 괴롭히거나 하는 일 없이 바 둑 장기 두며 잡담 하고 지내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감시도 아주 느슨하여 거의 감시가 없었다는 표현이 오히려 맞을 듯 하고 여기서 탈출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특별히 탈출할 마음 이 들지 않아 모두 그날그날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주일 쯤 지났을 때 약 20여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을 전 부 금산의 산내면으로 데리고 가서 집단 총살 하였다고 한다. 서울 등지를 떠돌며 고생하던 나는 6.25가 나자 이제는 내세상이 되 었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