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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논산의 어제이야기 또 이 분들의 탁월한 언변은 참석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하여 완 전히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살고 있던 우리면의 경우 한 원로의 말에 의하면 당시 면 전체 약 2,500여 세대 중 우익은 18세대 뿐 이고 나머지는 전 부 좌익이라고 할 정도였다. 즉 적극적으로 우익 활동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는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주들의 횡포와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 등 을 보면서 가슴속에 울분을 가지고 살아오다가 해방이 되고 평소 존경 했던 분들이 좌익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그 것이 옳은 길인 줄 알고 그 쪽으로 가게 됐다. 처음 공산당의 외곽조직인 민청(민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이민청이 후에 민애청(민주애국청년동맹)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 하였는데 나는 우리 마을 민애청의 부위원장이 되었고 우리 면의 민애청 부위원장도 되어 주로 나이 많고 덕망이 높았던 위원장들의 지 시에 따라 조직의 충실한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 이 때 순전히 걸어서 다른 읍면 민애청 조직책들을 찾아다니며 심부 름 하느라 논산군내 웬만한 마을은 거의 다 다니다시피 하였다. 그들은 서로 주고받는 비밀문서를 “리포타” 라고 하는데 아주 얇은 미농지를 쓰고 가로 세로가 5~6cm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종이 를 사용한다. 이것을 전할 때는 돌돌 말아서 여자들은 머릿속에 감추고 남자들은 신발 속에 감추는 방법으로 이동하여 전달한다. 한번은 내가 이 리포타를 전달 할 일이 있었는데 꾀를 내어 대나무를 세게 잡아당기며 낫으로 베면 중간에서 대나무가 갈라지는데 그 속에 이 리포타를 숨겨 가지고 오다가 순경에게 검문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