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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논산의 어제이야기 묵 35)을 나누어 주었다. 당시 농촌의 실정은 농사를 지어 식량으로 먹 기도 하지만 쌀을 시장에 내다 팔아 옷, 신발... 등 생활필수품을 구입 해야 하는데 쌀을 강제 공출 해 가니 경제적 어려움은 말 할 수 없이 피폐해갔다. 그래서 가을에 추수 하면서 벼를 집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산속의 으슥한 곳에 숨기기도 하고 장독대의 바닥을 파고 그 속에 숨기 기도 해 보지만 번번이 일본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강제 공출을 당해야 했다. 나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강경에 있던 일본인 정미소에 들어갔다. 당시 강경에는 3개의 큰 정미소가 있었는데 강경 노동조합 사무실 옆 에 2006년까지도 정미소 건물 일부가 남아있었고 현재는 시민공원이 된 한국산업사가 다까하시(高橋) 정미소였고 현재는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졌는데 세편(서편)에 있던 시마가와(島川) 정미소 그리고 엔도(遠 藤) 정미소 이렇게 세 군데가 있었는데 세 군데 모두 엄청나게 큰 정미 소였다(우리가 흔히 보는 시골의 방앗간 수준이 아니고 오늘날 웬만한 대기업의 공장처럼 건물이 연동으로 이어져 있는 커다란 건물군이 그 야말로 도정 공장 이었다) 당시는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거의 전부 배로 수송을 했는데 전라도 일대와 충청도에서 나오는 벼를 배로 강경 으로 실어와 강경에서 도정하여 백미로 만들어 다시 배에 실어 일본으 로 가져갔다. 벼를 배로 실어올 때 쌈판36) 이라는 배가 3일 만에 한번 씩 실고 오 는데 한번에 600가마 씩 실고 온다. 34) 공출 : 일제 강점기 농민이 생산한 쌀을 시세의 반값 정도에 강제로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가던 제도. 35) 콩깻묵 :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 가축사료나 퇴비로 쓰는 것인데 쌀을 강 제로 빼앗아 가고 이것을 사람 먹으라고 가져와 읍면으로 할당하여 돈을 받고 팔았다. 개중엔 곰팡이가 피고 썩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36) 쌈판 : 장도릿배 - 먼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 하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데 쓰는 배로 쇠못 없이 참나무 못으로 지은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