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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39 알아봐 준다고 하다가 경식이 죽고 그냥 시지부지 되구 말았어요. 독립운동 당시에 독립자금 심부름 했던 사람들이 둘이나 있어 그 사람 들이 우리가 보증 설테니 독립유공자 신청 하라구 했지만 우리집 양반 이 싫다구 우리집에 무신 서류가 하나라두 있어야지 남 말만 보증세워 서 어떻게 신청 하느냐구 안 했어요. 우리 시할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이셨어요. 우리집 벼를 처분 하실 때도 이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어야 그 때 벼 를 처분 했어요 벼가 익기 전에는 항상 벼를 남겨뒀어요. 흉년이 든다든지, 천재지변에 대비 하시는 거지요. 참 지혜로운 분이시지요. 그리고 논의 벼가 익어 이제 재고 벼를 처분 하실 때도 여기 저기 창 고에 있던 벼를 가져다가 저 아랫말부터 여기 집 앞에 까지 길 양옆으 로 죽 하니 벼를 싸놓으면 때론 벼가 없어지기도 해요. 그럼 일하는 사람들이 와서는 시 할아버지께 큰일났다구 벼가 다섯 가마나 없어졌다구 그래요. 그래도 시할아버지께서는 내비두라구 어려운 사람들이 가져 갔으니 내버려 두라구 그러시구 다른 말씀이 없으셔요. 시할아버지가 처음 살림 시작 하실 때 여기 교촌리 풍물 장만 하는데 농기가 없어 시할머니 결혼 때 가지고 오신 이불보를 가지고 깃대 폭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얘네 할아버지가 재산을 더 많이 모을 수 있었지만 세상이 재산 많이 모아가지고 뭐 할 때가 아니라고 더 이상 재산을 모으지 않았어요. 종중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정도였으며 특히 천문학에 밝아 동아 일보 1937년 12월 16일, 21일, 24일자 에 그 연구 요지가 사진과 함께 보도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