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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논산의 어제이야기 왜 망했냐믄 일본시대에는 벼두 제대루 말리구 모든걸 규정에 맞게 했는데 해방이 되고 모든 질서가 제대로 안잡혀서 벼두 홀태서 금방 나 온 물이 줄줄 흐르는 벼를 그냥 가져다 공판하구 벼가마의 근대를 늘릴 려구 벼가마 속에 또 가마니를 이중으로 넣기두 하구 심지어는 벼가마 속에 돌멩이를 집어넣기도 해서 이런 벼를 가지고 방아를 찧으니 쌀이 제대로 나옵니까? 원래 벼 두가마를 방아찧으면 쌀 한가마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거죠. 그럼 거기 정미소는 정부와 계약해서 군량미를 대줘야 되는데 우리 가 손해를 보면서 방아를 쪄서 쌀을 대 줘야 되잔아요. 그러니 위토답30) 으로 냉겨 놨던 논 다 팔구 이거저거 다 팔아서 디밀 었어요. 그랬지만 결국은 망하구서 빈손쥐구 나왔어요. 얘네 증조부 살아계실 적에 독립자금도 대구 구휼 사업도 많이 했어요. 여기 노성서 상월 돌아가는데 차돌모랭이 거기는 상월사람들 중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 시켜서 호안공사 축대 쌓게 하고 그 사람들 쌀 주고 이쪽 노성 쪽은 노성사람들 시켜서 일 시키구 쌀 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시할아버지께서 독립자금 댄 거는 부산에 가서 서류가 다 있다는데 거기서 서류를 떼 오고 보니 반 조각 밖에는 없어서 그게 인 정이 안 된다쟌아요. 그래 중간에 일봐주던 사람이 경식이 31) 보구 참 별일이다 이게 어떻 게 된것이냐 면서 이은 32)선생이 독립자금 출자한게 분명한데 하며 잘 30) 위토답(位土畓) : 수확을 제사 등에 쓰기 위하여 마련한 논으로 대개 묘소에 딸려 있 으며 농지 분배시 일정한 넓이의 위토답은 농지분배에서 제외 해 줬었다. (통상 묘 1기당 6마지기 즉 1,200평) 31) 경식: 양창호의 큰아들 윤경식 1999년 57세로 사망함. 32) 이은(離隱) : 양창호의 시조부인 윤하중의 호(號). 이은은 학문도 높았고 집안일은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