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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33 게됐지 뭐~’ - 당시 논산 명재 댁에서는 서울 가회동에 집을 사서 집 안 자녀들을 서울 집에서 머물며 학교에 다니게 했다. 그리고 집안 어른들이 서울 나들이 할 때 기숙처로 삼았었다. - ‘6.25 났을 때 우리 큰애(양창호의 큰아들 윤경식)가 열두살 국민핵 교 5학년 땐데 저희 당숙들 하구 서울서 일주일을 걸어서 여기 집으루 왔어요. 오면서 죽을 고생 하구 또 죽은 사람들 시체를 많이 보구 얘가 놀래 가지구 집에 와서 병이 나서 그 때 아주 얘 죽는중 알었어요. 첨에는 피난을 저 가곡20) 으루 갔었어요. 근데 아무일 없다구 하나두 무신 피해 없다구 내려오라구 해서 집으 로 왔어요. 그랬는데 우리집에다가 인민군 본부를 채려서 또 먹을거 장만 해가 지구 또 저 한천 21)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 때 우리집서 머슴 살던 사람들이 우리를 참 잘 보호 해 줬 어요. 그래서 암일 없이 이렇게 잘 넘어 왔어요. 하루는 사람들이 밖이서 웅성웅성 하더니 집으로 들어 와요 그러더니 지금 쥔양반이 저 사랑채 대청 대들보에 매달려서 인민군들 한티 문초 당하구 있다구 큰일 났다구 그래요. 그런디 그 때 인민군들이 지금 이정치(인공치하)가 어떠냐? 바른 대로 대라구 했대요. 그런디 우리집양반22)이 참 머리가 존분여요. 20) 가곡 :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 21) 한천: 논산시 상월면 한천리 22) 우리집양반 : 양창호의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