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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31 4. 양창호 명재 윤증선생 11대 종부. 1919년 음력 6월 1일생. ‘저그번에 명재 할아버지 영정을 서울로 모셔 가는데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어. 온 집안에 아무 것도 읍능거 같구... 내가 시집와서 70년을 모셔왔는 데... 삼월삼질날 하구 구월구일날 대청 깨깟이 청소하구 영정 모시구 일가 으른들 전부 도포입구 오셔서 제사 지내구... 영당은 영당대루 하 지만 여기 종가에선 종가 대루 그렇게 모셔왔는데... 이제까지 한두 번 이 아니지만 지난번 그 난리를 격구18) 이제 할 수없이 그렇게 모셨지 만 우리 손자가 지금 고등핵교 2학년인데 그래두 그 애가 봐야잖아요. 그러니 방학 때는 애를 데리구 가서 꼭 영정에 절 시기구 명재 할아 버지 꼭 보게 하라구 내가 얘(아들 완식)에게 신신 당부 했는데 잘 될 런지 모르겠어요.’ - 논산 명재 고택에는 유물을 탐낸 골동품 도둑이 자주 들어 여러 번 한옥의 벽채를 훼손 하는 등 피해를 입었었다. 이 면담은 2006년 7월 10일에 이루어 졌는데 면담이 있기 바로 전 에도 도둑이 들어 직접 유물의 피해는 없었으나 방의 중방과 벽을 훼손 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모시고 있던 명재 윤증 선생의 영정을 안전한 국가기관에 관 리 기탁하게 된 사연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 하는 내용이다.- 종손인 윤 완식의 말에 의하면 원래 명재 선생의 영정은 궁중의 화원이 그렸는데 명재 선생께서 자신의 영정 제작을 허락하지 않았다. 18) 난리를 겪구 : 종가에 자주 도둑이 드는 일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