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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27 그때 애들 아버지께서는 신문 기자를 했었고 시아버님께서는 연산 역 전서 사셔서 사람이 사무 왔다 갔다 하구 학교 댕기는 애들이 역전서 신문을 가져오구 하니까 귀가 어둡진 않았어요. 그래서 해방 된 것두 그날 바루 알 수 있었지요. 그 적이는 통학차를 연산서 타면 대전까지 두 시간이 걸려요. 통학차 뒤칸에 짐칸이 있어서 역전마다 사람두 타구 내리지만 짐두 실 쿠 내리구 하니라구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거기다 연산역서는 또 물 채우니라구16)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서 연산 역 근처에 사는 학생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바로 여기 숲 말 쯤 기차가 오면 “저기 숲말 앞이 차온다” 하면서 그 때 일어나 세수 하구 밥먹어두 연산역에서 차를 탈 수가 있었어요. 애들 아버지는 신문기자를 하니까 주로 대전 가서 많이 있구 집에는 가 끔 들르구 했지요. 그적이는 교통두 나뿌구 하니까요. 신독재 할아버지 제사 때는 요즘보다 손님이 많이 오셨었지요. 그리구 세일사 잡수시러 가시는 손님들도 오셔서 우리 집서 주무시고 시사 잡수러 가고 했지요. 그 적이는 뭐 한만읍는 17) 시상잉개요. 큰아들이 소띠(1949년 생)여요. 큰아들 낳구 이듬해 6. 25가 났어요. 그 적이 우리 집은 저 벌곡 신독재 할아버지 묘소 아래 제각 있는 곳 16) 물 채우니라구 : 증기기관차는 물탱크의 물을 석탄으로 끓여서 수증기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주유소처럼 중간 중간에 기차에 물을 넣는 시설이 있었다. 연산역의 급수탑은 오늘날까지 남아서 국가등록문화재가 되었다. 17) 한만읍는: 한도나 기간을 정해 놓고 급박하게 사는 게 아닌 한가하고 여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