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page

논산시 독립유공자 금석문 / 231 22. 애국지사 손필규(愛國志士 孫弼奎) 애국지사 손필규는 밀양인으로 호는 盤菴이요 서기 1870년 7월 20 일에 晟烈의 셋째 아들로 논산시 은진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반암 손선생은 어려서부터 漢文에 능통하고 성년이 되자 일본 침략 으로 국운이 기우러진 것을 통탄하면서 국운회복과 도탄에 빠진 국민 을 구제하기로 결심하고 약관 25세에 천도교 초산 포접주로 나가고 25 세 때 벌서 독립운동기초를 굳혔다. 1904년엔 손병희, 권병덕, 권동진, 오세창 등과 제휴하여 각처를 다 니면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진보회를 조직하였다. 1912년에는 서울 봉황각에서 49일 동안 국운회복을 위한 기도를 드 렸고 1918년에는 손병희 산하의 교령직을 맡아 동지들을 모으고 한편 으로는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였다. 그 후 손필규 선생은 천도교 은진 교구장을 맡았고, 지방순회 위원과 논산군 교구장직을 맡아 논산, 대 전, 공주, 부여, 임천, 청양, 고산, 진산, 금산, 진안, 용안, 함열, 이리, 옥구, 군산 등지에 관내 교인들을 밀파하여 독립운동을 고취시켰다. 1919년 3월12일 논산읍내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펼쳐졌다. 이 때 반암 서선생은 김태오와 함께 읍내에 거주하는 천도교인 민영순으 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고 시위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우고 김태오, 이백순, 이근옥과 함께 태극기를 그려서 준비하고 있었다. 12일 오후 3 시경 선생은 동지들과 같이 논산 읍민과 학생 100여명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여기에 호응 하여 시위군중이 무려 수백 명에 달했다. 무저항 평화 시위운동인데도 일경은 무력으로 이를 저지하며 발포를 마구하여 시위군중을 해산시킬
237page

손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