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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17 1950년 9월 28일 논산군수 김경한외 31명이 부산 피난지에서 논산군청에 복귀 하기위하여 육군본부 부산지구 철도수송관으로부터 발급받은“공무원여행 증명서”이다. 당시엔 이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하여 며칠 씩 기다려야 했으며 이런 증명이 있어야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당시 논산 군청에는 필수요원 으로 직원이 남았었는지? 금강 하구인 군산에서 반경 12Km 이 내는 전부 피난을 하라고 하는 소개 명령이 있어 필수요원이고 뭐고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피 난을 가게 됐다.9) 이후 인천 상 륙작전이 성공하고 9.28 수복이 된 후 논산 군청 복귀를 위하여 부산역 알티오(RTO)에10) 매일 처럼 나가서 기차표가 나왔는지 확인을 하고 사정을 했다. 당시에는 기차를 타기 위해 수 만 명이 대기하는 상황이라 미군 수송관이 기차를 탈 수 있는 날 을 지정해 주는 제도로 운영 되 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차를 타게 됐 는데 기차의 운송 사정상 바로 9) 군산기점 12km 반경 소개 명령: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할 때 해군 고위 장교들은 인천 항의 평균 7m에 달하는 극심한 간만 차, 함선 접안 지역의 협소, 상륙 즉시 시가전을 펼쳐야 하는 악조건 등 여러 여건상 인천상륙작전 불가 입장을 제기 했고 대신 군산 상륙을 강력히 제기 했으며 이후 인천으로 상륙지점이 확정 된 후에는 북한군에게 작 전상 혼란을 주기 위하여 동해안의 주문진, 삼척 그리고 서해안의 군산에도 상륙작전 을 펼치는 것처럼 여러 기만전술을 전개 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김영한씨가 이리에 아군기의 오폭이 있었다는 증언도 이런 인천상륙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적군 을 속이는 기만전술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0) RTO: Railroad Transportation Office(군용 철도 수송 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