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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논산의 어제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하여 지붕도 없고 화장실 시설도 없는 배위에서 갖은 어 려움을 겪으며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부산에 도착 했는데 전국에서 피난민이 몰려오니 부산에서 다 수용을 할 수 없어 덕적도로 보낸다며 우선 신원 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로 간다는 이야기가 나오기에 우리 일행 중 박우의 목사 님이 계시고 나는 속장이라며 직분을 밝히니 교인들은 우선 내리라고 하여 같은 식구라고 말 하고 학교비 직원들 둘도 함께 내렸다. 그런데 거기서 교인인지 아닌지 시험을 봤다. 그리고 목사님들은 교회로 보내고 일반 신도들은 교인 시험에 합격 해야 금성중학교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래 거기서 내가 교인 시험에 합격하여 우리 직원들 둘과 함께 금성 중학교수용소에 가서 자취 생활을 하게 됐다. 그 때 목사님은 교회로 가게 되어 우리와 헤어졌다. 여기서도 역시 미국의 소리 한국말 방송을 청취 하며 전황을 파악 하 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가 매일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으니 뭐 장사라도 해보자며 능금(사과) 장사를 하자고 하여 자전거를 가지고 구포8) 로 가서 능금을 받아다 파는 장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산 시청에 가서 공무원 등록을 하는데 거기 가니 충청남도 지사님, 도청의 국 과장님 등 많은 공무원들이 있었다. 등록을 하니 기본급은 주었으며 그 때부터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하여 거리 청소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8) 구포: 부산의 낙동강 변에 있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성한 과수원이 많이 있었다. 6.25 당시는 물론 그 이후까지도 과수원이 많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