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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독립유공자 금석문 / 173 8. 애국지사 곽성진(愛國志士 郭性鎭) 일본 강점기에 애국지사 곽성진(郭性鎭)은 현풍인으로 서기 1899년 10월 6일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서 곽우영(郭佑永)의 독자로 태어났 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전남 순천의 외가에서 공립보통학교를 다녔 다. 1917년 19세가된 그는 망국의 서러움을 안고 상경하여 경성 보성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방학 때면 귀향하여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국권회복을 위해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계몽활동을 하였다. 서기1919년 삼일운동 당시 그는 학생으로 학우들과 파고다공원에 나가 독립선언서 한 장을 얻어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에 내려 와 보니 동지 포섭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중북정의 석옥형(일명 석광 렬), 황금정의 박금봉, 중정의 강세형 등과 함께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곽성진은 자금조달과 독립선언서의 필사를 맡기로 하고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강경에서 1919년 3월 10일 오후에 옥녀봉에서 독립만세 시위 군중이 내려 와 세 사람은 이들과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며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뿌리며 시위를 하였다. 이를 본 왜 경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주동자들을 체포 구 금시켰다. 이 때 잡히지 않은 곽성진은 늦은 저녁에 집안에 동지들을 모이게 하고 다시 다음 시위의 모의를 하던 중 일본 상인들의 밀고로 체포되어 그 해 4월에 공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되고, 보안법의 위반죄로 태형 90을 언도 받았다. 그 해 5월에 박금봉, 강세형 등과 혜성단(慧星團)을 조직하고 지하운 동을 5년간 하였다. 이로 인해서 그는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낙인이 찍 혀 1925년 5월에 양촌으로 이사하고 농사일을 하며 은거하였다.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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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