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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11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징용 보내는 업무를 담당했던 군청 직 원은 징용간 가족들의 보복 위협에 몸을 숨기고 도망 다니기도 했다. 또 논산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던 오다 라는 일본인은 갑자기 변화된 환경에 충격을 받고 자살 했으며, 충청남도 지방과장 이던 아끼야마 세 다 라는 사람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자신의 처지가 비참 해 진 것을 비 관하여 자살 했다. 그래도 남한 지역은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북한지역에서는 일본인들에게 절대 차에 못 타게 하고 전부 걸어서 가도록 했었다고 하는 말을 후에 들었다. * 6.25와 김영한 6.25 당시 나(김영한)는 논산 군청에서 학교비3) 사무를 담당하고 있 었다. 그런데 6.25 발발 2~3일전 당시 논산 군수가 재해복구공제회 충남 대표로 서울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나도 여기에 학교비 담당자로 군수 를 수행하여 출장을 갔었다. 돌아와 회의결과보고서 작성 등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충청남도의원 (議員)을 지낸 홍민씨로부터 “38선이 무너졌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일요일이지만 군청으로 갔다. 그러나 개전 초기에는 휴전선에서 북한군의 일시적 도발 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우리 국군이 바로 반격하여 격퇴 할 것이므로 국민들은 안정하라고 하였다. 3) 학교비사무: 교육청이 독립돼 있지 않던 당시에 군청직원이 교육(학교)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