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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논산의 어제이야기 이후 더 많은 군인이 필요하자 실업계를 제외하고 인문계 학생들에 게는 학병에 지원 하도록 강요 하였다. 이 때 내(김영한) 동창생들로 일본에 공부하러 갔던 김재설, 김연수, 정규창, 등 친구들이 전부 학병이 되어 조선으로 오게 됐고 동창 서기 호는 후에 징용을 가게 됐다. 이 때 천주교 신자였던 김재설 친구는 대건중학교 설립에 깊이 관여 했었다. 나(김영한)는 해방 때 고원(雇員)-현재의 서기보에 해당- 의 직급에 있었다. 일제 말기에는 일인들은 거의 군대에 징집되고 한국인들이 대부분의 사무를 맡았다. 당시 군청 직원 중 정식직원은 판임관(判任官)으로 노영환(보성전문 졸), 고원(雇員) 김영한 등 몇 명이 있고 임시직원들이 대부분을 차지 할 정도로 많았었다. 조선 시대 갑오개혁(1894) 후 전국의 현(縣)을 전부 군(郡)으로 변경 하였었다. 은진 군청이 한 때 강경으로 옮겨 갔다가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으 로 연산, 은진, 노성이 합하여 논산군이 탄생 하면서 기존의 3개 군청 은 없어지고 논산에 논산군청이 개설되었다. 당시 강경 사람들이 논산은 지리적 중심지에 가깝다는 것 뿐 인사, 행정, 금융, 교통 등 모든 것이 강경에 집중되어 있다면서 논산에 군청 소재지를 두는 것을 강력히 반대 했었다. 전국에서 면소재지도 아닌 곳에 군청을 두는 곳은 논산 밖에 없었다 고 들었다.(*1914년 논산군이 탄생 할 때 논산은 은진군 화지산면 논 산리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