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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논산의 어제이야기 논산시 광석면 이사리에서 태어났고 4살 때 우리 집이 광석면 천동리로 이사했다. 광석 공립학교 4년 졸업 후 논산 보통학교(현 논산부창초등학교) 5년 으로 편입하여 보통학교 6년 과정을 졸업 하였다. 보통학교 졸업 후 “이사정사(梨寺精舍)”라고 하는 한문 서당 에서 1년 쯤 한문 공부를 했다. 이사정사의 설립자는 강영수 선생 이었고 강사는 신종균선생 이었다. 이 때 광석보통학교에서 선발한 농촌지도생에 나와 신두철이 뽑혀 농촌 지도생으로 농사지도, 문맹자에 대한 야학 지도 등 이른바 농촌 계몽 운동 담당자로 소화 10년에서 14년(서기 1935~1939)까지 근무했다. 중일전쟁 후인 소화 12년(1937) 말부터 농촌진흥청년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던 중 1939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대전의 제사공장에서 5~6개월 정도 일하다가 삼국상회(현 석탄공사 전신) 대전지사로 옮겼는데 당시 월급은 25원을 받았다. 일본에 가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1941년에 퇴직했다. 일본 학교에 원서 내고 대기 중이었는데 논산사거리의 현 국민은행 옆 건물에서 동본사 라는 서점을 경영 했던 권중민(당시는 논산군청 직 원)씨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그는 나에게 군청의 세금을 징수하는 도비(道費) 임시직원자리가 하나 있으니 거기서 한 달만 근무 하라는 권유를 했고 나는 이에 응하여 한 달 동안 성실하게 근무했다. 당시의 일당은 1원 20전 이었다. 한 달 기간이 끝나자 내무과장 등이 나에게 대단한 호감을 가지며 앞 으로 자리가 나면 우선적으로 정식직원으로 채용 해 줄 테니 임시직으로 더 근무 해 달라고 강력히 권유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