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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2월28일 수요일 8 (제134호) 시·군·구 지부 본 관 입 향 조 입향지 중시조 입향년도 경로 비고 밀성(밀양) 이종(李宗,생물 미상) 고창읍노동 돈재공휘연생(衍生) 1497 전남장성 돈재공증손 밀성(밀양) 사상(師商,1607∼1665 고창읍화산 돈재공휘연생(衍生) 1628 고창읍노동 이종(李宗)의 6세손 밀성(밀양) 시현(時顯,1792∼1857) 공음면연동 충헌공휘척(陟) 1820 광주임곡 무안 사운(思運,1737∼1784) 대산면중산 경파(京派)진경(晋卿) 1760 남양주 밀성(밀양) 치원(致源,1795∼1850) 고수면월계 양오공 휘 서봉(瑞鳳) 1830 고수면장두 밀성(밀양) 서봉(瑞鳳,1463∼?) 고수면장두 충간공휘문경(文卿 1500 경남밀양 전남무안 경유 밀성(밀양) 태동(泰東,1659∼?) 공음면평촌 충헌공휘척(陟) 1689 경기여주 충주 기휴(基休,1789∼1865) 공음면평산 문간공휘상(祥) 1820 광주송정 밀성(밀양) 대진(大鎭,1748∼1809) 대산면갈마 도평의사공휘언인(彦仁) 1770 영광홍농 한양에서영광임시정착 밀성(밀양) 치열(致烈,1844∼1899) 무장면석수 청재공휘심문(審問) 1840 흥덕사천 규정공后 함양 경신(慶信,1674∼1752) 무장면석수 감찰어사공지온(之溫) 1716 경기남양주 상서공 휘 善 后 순천 돈근(敦根,생몰미상) 무장현 이온(而溫) 1559 광주 돈영공(敦寧公,휘숙선(叔善)后 밀성(밀양) 재선(載善,1778∼미상) 부안면송현 낙촌공충원(忠元) 1802 충남천원군 규정공后,천원군 현 천안 시 죽산 기서(麒瑞,1730∼1782) 부안면운장 문정공휘원정(元貞) 1750 신림면무림 광주임곡에서신림경유 밀성(밀양) 증휘(增輝,1642∼1701) 상하면갈산 돈재공휘연생(衍生) 1674 전남장성 돈재공10대손 밀성(밀양) 성창(聖昌,1697∼1767) 상하면석남 청재공휘심문(審問) 1727 전남영광 규정공后 밀성(밀양) 천부(天扶,생몰미상) 상하면송림 청재공휘심문(審問) 1636 전북 완주 규정공后 순천 난손(蘭孫,1497∼1537) 상하면송정 문숙공휘석명(錫命) 1522 전남나주 밀성(밀양) 수현(遂鉉,1828∼1870) 성내면산림 학령(鶴齡,상계조사못함) 1840 ? 함양 양옥(良玉,1712∼1780) 성내면낙산 문원공휘지빈(之彬) 1735 전남영암 오한박성건(朴成乾)后 밀성(밀양) 병석(炳錫,1882∼1943) 성송면월평 규정공휘현(鉉) 1900 충남부여 해리면안산경유 순천 성렴(聖濂,1774∼1845) 성송면암치 이태(而泰 1810 ? 죽산 경신(慶臣,1797∼1846) 성송면판정 문정공휘원정(元貞) 1744 밀성(밀양) 우영(宇泳,1874∼1946) 신림면가평 충헌공휘척(陟) 1877 전남영암 판서공밀양(密陽)后 밀성(밀양) 상원(尙源,1564∼1596) 신림면주산 돈재 공 휘 연생(衍生) 1584 전남장성 아곡박수량(정혜공)后 밀성(밀양) 호근(好根,1690∼1745) 심원면도천 청재 공 휘 심문(審問) 1720 상하면송곡 규정공后 밀성(밀양) 경균(慶均,1642∼1701) 심원면월산 청재 공 휘 심문(審問) 1697 전주 규정공后 밀성(밀양) 봉언(鳳言,1674∼미상) 아산면도봉 도평의사공휘언인(彦仁) 1700 전남장성 밀성(밀양) 사일(師一,1734∼1803) 아산면중복 충간 공 휘 문경(文卿) 1779 고수면장두 양오공 휘 서봉(瑞鳳)后 함양 재휘(載徽,1781∼1803) 아산면용장 상서공 휘 선(善) 1800 상하면용복 난포 안밀(安密,1434∼?) 해리면왕촌 숭조(崇祖) 1493 무장오리동 오리동(현해리면방축리) 밀성(밀양) 계영(桂英,1574∼1633) 해리면목동 맹손(孟遜) 1600 전남장성 함양 상연(尙淵,1631∼1696) 해리면어룡 구당 공 휘 世榮 1680 경기고양 밀성(밀양) 승서(昇瑞,1683∼1791) 흥덕면사천 청재 공 휘 심문(審問) 1706 ? 고창군은 전라북도의 서남단에 위 치하고, 동북은 정읍시, 부안군, 동남 은 전남 장성군, 영광군에 인접하고 서북부 일대는 서해에 임하고 있다. 현재의 고창군은 1914년 행정구역 개 편 때 고창, 무장, 흥덕 세 고을이 병 합되어생긴명칭이다. 특히 교통이 편리해 호남의 내금강 으로 불리는 명승지로서 1979년 도립 공원으로 지정된 선운산, 수천년의 역사가 쉼 쉬는 고인돌유적, 단종 원년(1453)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총화 축성한 자연석 성곽의 고창읍성, 명사가 십리에 펼쳐지고 송림이 우거진 구 시포해수욕장, 수백년 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4㎞의 백사장은 모래가 가늘고 경사가 완만하게 이루어진 동호해수 욕장, 10㎞의 해안선 과 접하여 1200여 ㏊에 이 르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 져 있 는 하 전 마 을 갯 벌 체 험장, 20세기 한국의 대표 적 시인인 미당 서정주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 향유 를 통한 문화창달과 한국 문화의 역사성과 우수성 을 알리는 미당시문학관 등의 관광지와 동학농민 혁명 무장기포기념제, 고 창모양성제, 복분자와 수 박대축제, 고창갯벌축제, 해풍고추축제, 청보리밭 축 제 등 대 한 민 국 대 표 축 제가 이어지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찾아오고 싶고 와서 오래 머물고 싶 은 친환경생태도시로 유 명하다. 고창군의 성손은 2000 년 기준 1,813가구 4,896명 의 성손이 거주한 것으로 조 사 되 어 이 는 당 시 고 창 군 6만7천여 인구중 7.3% 를 차지한다.( 고창군 인구 분포표참조) 고창지역에 입촌 역사 를 상고해 보면 1493년 난 포박씨 박안밀(朴安密) 公이 세조 10년 사헌부감 찰 재직 중 당시 권력암투 에 위협을 느껴 사직하고 오리동면 왕촌리(현 해리 면 왕촌)에 은거 하였고, 1 497년 밀성박씨 돈재공의 증손 휘 이종(李宗) 공이 전남 장성에서 고창읍 노 동마을, 1500년경 밀성박 씨 은산부원군 후 충간공 의 증손 양오공(휘 서봉) 이 경 남 밀 양 에 서 무 오 사 화를 피해 전남 무안에 임 시 정착하였다. 고창군 고 수면 장두리의 입향하는 등 고창지역 34개 마을에 크고 작은 집성촌을 이루 고 있 다 . 고창군지역에 박씨종친회 창립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숭 덕전에서 설립된 화수회에 이어 1946년 박씨대종친회로 읍면 별 소단위 명맥을 이어오며 친목을 도모해오다 1964년 10월 5 일 박씨고창군대종친회 결성을 위해 흥덕면 박장근 현종 자 택에서 13명이 모여 조직결성을 위한 준비회의를 거쳐 이듬 해 1월 15일 발기위원장에 박장근 현종을 추대하고, 그해 3월 1일 박씨고창군대종친회를 공식 창립하여 박장근 현종을 초 대회장으로추대하고그체계를다졌다. 1970년 박용기 전 국회의원(제10대)이 거금 500만원을 헌 성하고 박장근 회장 50만원 박우영 50만원, 박범영 당시 총무 150만원 등 750만원으로 민가를 매입하여 회관으로 활용하였 다. 1972년 3월 1일 제2대 박영석 회장이 취임하고 1978년 회칙 을 개정하였으며, 1979년 3월 1일 박우영 前 교장이 제3대 회 장으로 취임 그동안 회관으로 사용했던 민가가 협소하고 퇴 락하여 1994년 4월 28일 종친회관을 신축을 위한 기공식에 이 어 다음해 3월 20일 현 회관을 준공하여 당시로는 시군단위 종친회관건립은매우이례적이었다. 종친회관건축에는남다른열정이있었다. 부족한 자금으로 인해 건설업을 하고 있는 박윤성 현종이 재능기부 즉 외상공사와 성손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재능과 자재(벽돌, 모래 등)을 기부하여 전세금을 유용하는 등 어렵 게완공을보게되었으나전세금은여전히부채로남았다. 2001년3월28일제4대박창구회장이취임하여회관신축으 로 인한 부체해결을 취임일성으로 천명한 뒤 본인이 먼저 거 액을 헌성하여 부채(전세보증금 등)를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 울이면서성손화합에도최선을다했다. 2015년 현 박상래 회장이 제5대 회장으로 취임 지난해 부채 를 완 전 청 산 하 고 자 립 기 반 을 다 지 고 성 손 들 의 육 영 사 업 을 개시하여종친회숙원을이루었다. 창립이후 청년회와 여성회를 결성하여 기반을 다진 박씨고 창군대종친회는 고창초등학교와 실내체육관에서 천 여 명이 넘는 종원들이 참석 성손화합 한마음대회를 통해 애종을 실 천하였고, 10여대의 관광버스를 동원 경주 대제에 참석하고 관내 입향선조 향사에도 참여하는 등 숭조를 위한 사업과 선 조유적지탐방을통해자기계발을이루었다. 특히청년회창립구성원들이현재대종친회부회장으로활 동하며 종친회 집행부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사고와 판단, 지각, 감정, 의사 등이 젊어져 타 시군종친회에 찾아볼 수 없 는활기를띠고있다. 박상래 회장은 고창지역에서 지방행정공무원(대산명장 퇴 임)으로 평생을 몸 바쳐 온 지역 토박이로 항상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우리는 혈연으로 맺어진 특별한 인 연을 가지고 있어 종친이 잘 되었을 때 격려해주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아름답고 훈훈한 종친회로 발전하길 기대한다며 몸 소 실 천 하 고 있 다 . 특히 박우영 현 고창군수, 박창구 4대회장, 박갑두 원로종 원, 박세근 전 교육장으로 구성된 고문단의 적극적인 자문으 로 보학을 다져오고, 금년부터는 선조유적탐방과 장학금 전 달(2명 각 100만원)을 통해 숭조와 애종, 육영을 통해 더욱더 발전하는 종친회로 거듭날 것으로 종원 모두가 다짐하고 있 어박씨고창군대종친회의미래는밝아보인다. 고창군 청년회의 역사는 박씨 중앙 청년회와맥을같이한다. 각 읍면단위 청년조직이 활발한 활 동을 하고 있을 당시 박씨중앙청년회 발기인대회 소식을 종친회로부터 전 달받고 5대회장을 역임한 박병열 회 장 외 4명이 1997년 2월 28일 경남 부 곡으로 출발 다음날 대회에 참석한 후 고창군지역에서도 읍면 청년회가 함께하는 군청년회의 필요성을 제기 하여 4월 1일 고창군박씨청년회 발기인대회를 위한 읍면청년 회장등14명이읍내개미식당에서첫모임을가졌다. 이어 10일에는 읍면회장과 회원, 군종친회장 등 23명이 참 석한 가운데 청년회 창립 주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주비위원장 에병열현종을선임힘찬출발을기약했다. 이때에는박씨중앙청년회역시19일창립총회를앞두고있 었다. 고창군 청년회창립 주비원회에서는 병열위원장을 비롯 한 회원 16명이 중앙청년회 창립식 장소인 경주 현대 호텔에 참석중앙청년회의태동을지켜보았다. 중앙청년회창립20일후인5월9일고창군청년회역시숭조 ·애종·육영의 3대 강령을 실천하여 시조대왕의 유훈업적을 선양하고 종친간 대동단결을 목적으로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 회장에 박규선 당시 강호상고 교장(현 전라북도 교육위원회 의장)을선임하였다. 규선 초대회장은 조직의 체계를 갖추는데 주력하여 제1회 고창군 종친가족 체육대회(1997.9.28)를 개최 1,000여명의 성 손이 참여하는 대성황으로 고창군 청년회 역사를 채워가기 시작했다.이듬해에는청년회방장산등반대회를개최하며친 목을 도모하였으며 이후 매년 정기적인 등반대회를 갖는 시 발점이되었다. 2000년 1월 27일 제2대회장으로 박세근 교육청 장학관이취 임하면서 고창군 청년회는 전국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선운산 등지에서 1박2 일 워 크 샵 을 개 최 보 학 교 육 과 가 훈 써 주 기 운 동 등 친 목 을 돈 독히 하였으며, 특히 숭조와 애종을 몸소 실천하는데 주력 경 주 대제에 관광버스 15대를 동원 650여명의 성손과 함께 참례 하며 뿌리의 소중함을 찾아주기 위해 정기적인 행사와 중앙 청년회의 수련회에 적극 동참하기 시작 했다. 이후, 중앙청년 회 모든 행사에 고창군 청년회가 적극 참여하면서 중앙청년 회역시내실을기할수있었다. 탄탄한 조직과 끈끈한 애종 정신으로 무장된 청년회는 3대 정원 회장(2002년),4대 종주 회장(2004년),5대 병열 회장(20 07년),6대 종만 회장(2009년),제7대 흥렬 회장(2014년)에 이 어 현 호인 회장이 제8대 회장으로 지난 2016년 취임 지금에 이른다. 창립이후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행사를 매년 치러오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아마 고창군 청년회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다.숭조와 애종을 실천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육 영에도 소흘함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선대 회장단과 회원의 업적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각오로 임하며 고창군 청년회 발전에각자가맡은바역할을다하고 있는것이다. 고창군종친회의한축으로자리잡으면서여성화와함께고 창군 종친회를 발전시키며 중앙청년회와 박씨대종친회 발전 에 밀알이 되어 가고 있는 고창군청년회는 영원무궁 할 것으 로기대해도좋을것같다. 특히 2016년과 2017년 연이어 개최된 한마음대회를 통해 1 천여 종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행사를 통해 종원 모두가 한마음이 된 듯 늦게까지 진행된 행 사에 누구하나 자릴 뜨지 않는 열정에는 박씨고창군대종친회 의저력을확인해주었다. 고창군여성회는 읍면단위 여성회의 활발한 움직임 속에 200 1년 청년회 제2대 박세근 회 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군여성회를조직하였다.당시 산파역할을 맡은 세근 청년회 장은 여성회의 필요성을 역설 하며 읍면을 청년회원들과 함 께 순회하며 조직을 출범시켰 다. 초대 회장을 맡은 박인선 회 장은 구)제일병원장 부인으로 지역은 물론 도내 탄탄한 인맥 으로 여성회장을 맡아 대종친회와 청년회의 모든 행사에 지 원을아끼자않았다. 그러나 2005년 말 전주로 이주하면서 여성회 또한 침체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으나 3년여의 공백을 가진 후 2009년 현 박선영 회장이 취임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으나 박 회장이 잠시 외국에 나가면서 박정자 회장이 취임 명맥을 유지하다 2015년 말 다시 박선영 회장이 대대적인 쇄신을 거 쳐 재취임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으며 매월 모임을 통해 친목 을도모하며지금에이른다. 최근여성들의역할이강조되면서고창군여성회또한자녀 들에게 외가의 조상을 알리고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박성의 후예로서자긍심을가질수있도록최선을다하고있다. 그리고매년대종친회행사와청년회행사에적극도움으로 서 모든 행사가 더욱 돋보이고 있어 고창군 대종친회의 전망 또한매우밝아만보인다. /글·사진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전라북도고창군종친회 뱚시군종친회를가다 박상래회장 ■ 고창 군 박씨 인 구 분 포 표 뱚박씨고창군대종친회설립 박장근초대회장 박영석2대회장 박우영3대회장 박창구4대회장 원로 종친분들이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며자연스레종친조직또한 대물 림되고있다. 박갑두고문 박세근고문 박우정고문 뱚여성회창립 박호인청년회장 매년청년회주관 한마음대회에행사장의열기는대단하다. 뱛박규선초대회장 제2대박세근 제3대박정원 제4대박종주 뱜뱜제5대박병열 제6대박종만 제7대박흥열 ■ 고 창 지 역 입향 현 황 뱚청년회창립 박인선여성회장 박래순총무 본관별 가구 인구 비고 강남 1 4 강릉 0 1 강진 0 2 경주 1 4 고령 2 7 고성 1 5 고흥 0 1 광산 2 2 구산 1 1 나주 2 3 난포 8 17 남양 2 8 남원 1 2 남주 2 3 남평 1 4 대천 0 2 면천 0 1 명성 2 3 무안 45 126 문의 3 6 문화 0 4 미산 1 2 밀양(밀성) 1500 4073 반남 11 41 봉산 3 3 부안 0 1 삼척 0 1 상주 18 36 선산 0 1 수원 0 4 순창 0 2 순천 69 158 여주 0 1 영암 0 1 영해 0 1 월성 0 1 음성 1 5 의성 0 1 인천 0 2 장성 2 2 전주 2 3 정선 0 1 죽산(죽주) 13 38 진안 1 3 진원 3 11 진주 1 2 진흥 1 3 초계 0 1 춘천 0 ‘1 충주 15 33 태안 0 1 태인 1 1 평택 2 2 하명 1 3 한양 5 8 함안 2 6 함양 79 220 함열 1 5 함평 2 4 함흥 0 1 해남 2 2 해명 3 5 미상 6 17 계 1,813 4,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