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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궐암 최동희 선생은 포덕31년 1월 14일 해월신사님과 손소사 사모님의 영식으로 태어나 일찍이 학업에 전념하셨으며 홍병기 선생의 누이인 성현당 홍동화(순영)여사와 결혼하신 후 일본으로 유학 조도전(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시다.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에 망명하여 63년에 고려혁명위원회를 창립 블라디보스톡에 거점을 두고 외교부장으로 상해파 고려공산당 영수 이동휘를 만나 천도교와의 독립운동연합 전선결성을 시도한 바 있으며 65년에는 중국 교포 교인 중심으로 천도교 최고 비상혁명위원회를 결성 외무위원장으로 레닌정부와 비밀정치군사협정을 제도한바도 있다. 67년 길림에서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여 당대표 자격으로 주중 소련대사 카라한을 비롯하여 임시정부 김규식 코민테른 동양책임비서 보이딘스키 국민당 장개석등과 순차적으로 면담을 통하여 독립운동의 지원을 요청하는 일련의 외교활동을 적극전개하시었으나 그 반응을 기대할 시일 여유도 없이 과로로 인한 신병 악화로 68년 1월 26일 38세를 일기로 불의에 환원 하시다. 이에 정부는 197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내리시다. 선생의 유해는 상해 불란서조계안에 안장되었는바 137년 9월에 손녀 인혜가 이장차 상해묘역을 찾아본 바 도시개발로 홍구공원에 집단 이장함이 확인되어 유해토 한 상자를 고국으로 모셔와 부인과 함께 이곳에 합장하다. 소수 선생 내외분의 성령이시여! 부디 후손들과 후학들의 심령속에 무궁토록 장생하시어 교회중흥과 통일조국의 광명을 비추어 주실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