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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하는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일찍이 미국 유학을 목적으로 도미(渡美)하여 1916년 9월 미국 본토로 건너온 후, 1917년 1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북미지방총회(北美地方總會) 총무로 택선되어 국민회의 발전과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19년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직되자 그 이듬해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임시정부의 군사 및 외교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21년 2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회장에 당선된 것을 비롯하여 1923년과 1924년에도 총회장으로 당선된 그는 국민회의 발전과 한인사회의 부흥을 위해 봉사하였다. 또한 1935년 3월 북미대한인국민회(北美大韓人國民會) 총회장으로 당선된 뒤 이듬해 5월 분열된 북미지역 한인민족운동단체의 부흥을 위해 각 지방의 대표자회의(代表者會議)를 소집하여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부흥과 미주 한인사회의 재건, 항일민족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정 후원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37년 1월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개정된 신헌장(新憲章)에 의하여 개최된 제1차 대표대회에 참석하여 북미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부(中央常務部) 총무로 선임된 이래 1939년까지 계속 연임하면서 국민회 부흥 이래 10년 동안 특히 태평양전쟁 이후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한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사업과 국방 후원, 한인 동포의 전시 안녕보장을 주도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光復軍) 편성을 후원하였다. 또한 조국이 광복된 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북미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부 총무와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주필을 역임하면서 국민회와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27년 동안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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