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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관(一誠館)의 유래 동래는 항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란 당시 동래읍민들이 송상헌 부사의 뒤를 따라 성을 지키다 장렬한 순국을 한 증표로 남아 있는 동래의총과 더불어 그 정신을 이어받은 청년 학생들이 웅거하여 최후까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항쟁을 거듭하던 이 일성관 또한 빛나는 역사의 유적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이곳에는 서○ 서당이 있었는데 1919년 동래청년회가 인수하여 쓰다가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이 전국에서 불길처럼 일어나게 되자 1926년 6월 그 서당을 헐고 우리 고장의 문화계몽운동과 청년사회단체의 집회소도 겸할 수 있는 근대식 회관을 짓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방해와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공사 진행이 여의치 않았었다. 이에 청년들은 모금운동을 널리 펴고 윤병항 같은 이는 자기집과 전답을 팔아 보태는 등 눈물겨운 성금으로 드디어 착공 3년 4개월만인 1933년 10월에 낙성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감격적인 낙성식도 일본경찰의 강제 중지로 군중이 격분하여 봉기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은 또 회관 사용 금지조치까지 내렸으니 실로 망국의 서러움이 하늘에 사무쳤던 그 내력을 어찌다 말할 수 있으리오. 이 건물은 그러한 깊은 유서와 숭고한 정신이 어려 있으나 오늘날 우리는 새삼 옷깃을 여미고 그 뜻을 기리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 건물이 우리 고장의 도서관으로 값지게 쓰이고 있어 선각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 사연을 새겨 길이 전하고자 한다. 1986년 12월 재단법인 동래기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