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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의 의거 그리고 그의 고통과 죽음은 부산 근대와 부산 정신사에서 하나의 엄숙한 항목이다. 부산의 근대는 찢긴 근대였고 특히 부산은 일제 수탈의 맨 앞에서 거의 벌거벗은 채 놓여 있었는데 요컨데 벌거벗은 채 찢긴 것이 박재혁의 고통이었다. 그는 왜 그토록 지독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으며, 그 고통에 이른 그의 의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 고통 속에서 깃든 것, 그 역사적 맥락과 정신을 찾아내 세워야 하는 것이다. 박재혁 의거는 식민지하 찢긴 근대의 좌표 속에 우리의 자각을 만들어갔다. 계몽적 흐름과 근대학교 설립에 뿌리를 두면서 이윽고 뜨거운 부산정신을 선포했던 것이다. 박재혁 의거는 식민치하 찢긴 근대의 좌표 속에 우리의 자각을 만들어갔던 계몽적 흐름과 근대학교 설립에 뿌리를 부면서 이루고 뜨거운 부산 정신을 선포했던 것이다. 독립운동은 단순히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일운동이면서 반제국주의운동이었고, 또한 근대 민족국가를 세우려는 운동이었다. 독립운동은 쓰러진 식민지 경험을 거친 우리 근대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피압박과 저항을 통해 근대를 잊힐 수 밖에 없었다. 그 고난의 강에서 피압박과 저항의 근대인으로 박재혁이 있다는 것이다. 남영사상-청년운동-근대 부산진 그룹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박재혁 의거를 떠받치고 있는 손발같은 것이다. 거기에 부산 근대를 관통하는 정신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 박재혁의 의혈투쟁은 민주화를 향한 열정을 불태운 부산 역사의 뿌리에 있을 것이다. -영원한 청년 의사 박재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