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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 - 대구형무소에서 최천택 선생에게- [1920년, 부산경찰서 폭파사건]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출생한 박재혁은 부산공립상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해와 싱가폴 등지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다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9월 14일 오후 2시 30분경 부산경찰서에 들어가 하시모토 서장의 오른쪽 가까이 접근한 박재혁은 서장이 자신에게 몸을 돌리는 순간, 자신이 의열단임을 밝히고 폭탄을 투척하였다. 당시 하시모토 서장은 부상을 입었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어 사건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1921년 3월 31일 3심인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의거 당시의 중상과 체포뒤의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와중에 폐병까지 얻었지만 일제의 손에 사형을 당하는 수치를 피하고자 단식을 시작한지 9일만에 1921년 5월 대구감옥에서 만26에에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부분적 성공에 그치기는 하였으나, 의열단원 최초로 의거를 성공시켜 이후의 의거들을 성사시키는데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