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page


471page

일신여학교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선언서를 전달받은 일산여학교를 비롯한 동래고등보통학교와 부산상업학교는 부산에서의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를 탐지한 일경은 3월 11일 휴교를 단행하고 학생들을 강제귀가 시킴으로써 시위발생을 원천차단하고자 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일신여학교는 교사 주경애와 박시연이 중심이 되어 3월 11일 김반수, 김응수, 김봉애, 심순의, 김복선, 이명시, 송명진, 박정수, 김난줄을 만세시위를 개시하게 된다. 시위에 참여한 교사 주경애와 박시연은 징역 1년 6개월, 9명의 학생들은 작 징역 5개월을 선고받았다. 일신여학교 만세시우는 당시 부산상업학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가 일경의 엄중한 감시로 시위가 무산된 시점에서 벌어진 부산 여성들의 항일구국운동이었다. 또한 일산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의 시위에 그친 것이 아니라 당시 좌천동 일대의 주민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을 시위에 참여시켰고, 부산을 비롯한 경남지역으로 만세시위를 파급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