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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장터 3.1만세운동 - 1919년 3월 29일(음력 : 2월 28일, 구포장날) ▷ 발단 1919년 3월 중순 양봉근(梁奉根, 화명사람,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과 임봉래(林鳳來, 구포면 서기, 화명동 거주)가 만나 3.1독립운동 소식과 거사 종용 한 후 윤경(尹逕), 류기호(柳基護)를 만나, 3.1독립운동 소식과 거사협의하고 상경 ▷ 경과 1919년 3월 27일-28일: 이수련 집에서 11명(임봉래, 윤경, 류기호, 김옥겸, 김윤길, 허정, 김용이, 최종호, 유진영, 윤대근, 이수련)이 모의, 29일 구포장날 거사키로 결정,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대한독립만세〉 현수막 등을 제작 1919년 3월 29일: 정오에 장꾼 1,000여명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김윤길 외 수명이 구포면사무소로 가서 면장 윤영태에게 민족적 양심으로 참가 종용, 그후 주동시위자 12명 구포주재소에 구금. 3시, 성난 독립운동 시위자 1200여명은 구포주재소 공격 →부산시 급파된 군경의 발포로 9명 부상(일본 헌병 2명, 순사 2명 중상)과 41명 체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