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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12월31일 일요일 4 (제132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박씨 행산공 전주문중 시향이 지 난 달 27일(음10.10.) 오전 11시 전북 전주 시 중인동 첨모재(瞻慕齋)에서 찬우 종친 회장의 집례로 오전11시 행산공의 장자 도은공(휘文彬)의넷째이조참판공휘신 총(臣寵)을비롯한아드님생원공휘응인 (應 仁), 손 자 승 정 원 좌 승 지 휘 결 (潔), 증 손 승정원동부승지 휘 원생(元生)의 제례 에 이 어 이 하 선 조 님 제 향 이 1 시 간 30 분 여 에걸쳐차례대로봉행되었다. 전주문중의 중인동 세거지는 600여년 전 입향 한 휘 신총의 손자 좌승지 휘 결 (潔)로부터 세계가 이어져 전주에서는 ‘중인동박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토호 성씨로성장했다. 이조참판공 휘 신총의 후예들이 밀양 에서 전주로 세거지를 옮긴 정확한 이유 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처가인 전 주유(柳)씨를 따라 전주에 세거한것으로 전해져왔으며, 도은공의 아우 소감공 휘 (諱) 문익(文翊)은 무관으로 고려시대 소감으로 기병과 보병을 합친 군대를 인 솔하여 전라도 전주지방에 잠시 주둔한 것으로 전해지고, 이후 형인 도은공과 더 불어 망복지의를 지켜 이조에는 벼슬을 하지 않고 충절을 다 하였다.라고 전해지 고있다. 또, 행산공파 세보(世譜)에 의하면 휘 신총(臣寵)은 문과 이조참판, 그의 아들 휘 응인(應仁)은 생원(生員)으로 모두 묘소의 위치는 표시되지 않고 다만 손자 휘 결(潔), 증손 휘 원생(元생)의 묘소가 전북 임실 마항동에 있었으나 몇 번의 난 (亂)을 거치면서 실전하였으나 그동안 묘소를 관리 해온 종원의 증언으로 다시 찾아 벌초 및 관리를 하고 있는 등 좌승지 휘 결(潔)이 처음 완산으로 입향 한 것으 로단비(壇碑)에기록하여전해진다. 또, 좌승지 휘 결(潔)의 장인(丈人, 全 州柳氏 文判事 克剛公)의 유허비에 그 記 錄이 되어있어 1,400년 중반으로 유추해 볼 수 있 다 . 입향조 휘 결은 무과에 올라 전농시 소 윤과 용강군수, 승정원좌승지를 역임하 였고, 아들 휘 원생은 용강군수, 승정원 동부승지를 역임하였고, 휘 원생(元生) 의 손자 휘(迪孫)은 판결사(判決事)를 거처 일본통신부사(日本通信副使)를 지 내는등대대로관직이이어졌다. 입향조를 비롯 조부 휘 신총,아버지 휘 응인,아들원생의묘소가몇 번의난리를 겪으면서 실전되어 첨모재 위편에 단소 (崇祖壇)를 마련 향화를 받들어 오고 있 으며, 주변에는 사계 김장생 선생을 주벽 으로 모시고 도암(陶菴)의 문인 지곡 유 조 선생,이괄의 난에 군사를 모집하고 양 곡을모아란(亂)을평정하고병자호란시 에도 마찬가지로 죽기를 맹서(盟誓)하고 싸운 매포 박동립(忠靖公 諱 世均의 12世 孫) 선생, 매포선생의 동생으로 태극(太 極) 성명지리(性命 之理)를 연구하고 두 터운 효제와 충신의 도를 행하여 경제역 량(經濟力量)이 가히 왕실을 보좌 할 만 한 청류당 박동현 선생을 배향한 청하서 원이있고,효자심원당기열(孝子深源堂 基烈), 지행당 상만(孝子 趾行堂 祥萬), 열부여산송씨(烈婦礪山宋氏)와전주이 씨(全州李氏)의정려(旌閭)가있다. 한편 이날 제향에는 주변에서 과수원 을 하고 있는 대규 종친회장이 손수지은 배를 제수로 준비하였고, 전주김제완주 축협 하가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영 애 일가가 종원들에게 달력을 배포하며 함께하는 등 젊은 청년들의 참석이 두드 러져참석자들을기쁘게하였다. /자료제공박철균前 지마왕릉참봉 행산공파전주종중숭조단(崇祖壇)시향 봉행 숭조단 -전북 전주시중인동소재.왼쪽부터휘신총,휘응인,휘결,휘원생(4位) 제향에참례한 종원들이 한자리에모였다. 전주문중입향조등븣600여년세거지토호세족으로성장 조선시대에 시행되었던 향약(鄕約)의 정신적(精神的)븡문화적(文化的) 가치 (價値)는 오늘날에까지 그 영향을 크게 미치는 가운데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의 함양박씨가 지역의 토성으로서 명성 을 떨치는 것은 아마도 양과동 향약을 재 정하여 지역의 유풍을 일으킨 선조님의 훌륭한 유훈을 받들며 정성스럽게 봉사 (奉祀)하고 후손들 간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정성에서 비롯된 듯 하여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봉행된 동정공파 종친회시향을함께해본다. 제사(祭祀)란 제수의 많고 적음을 가 리지 않고 선조를 향한 추원보본의 정성 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종중을 운 영 함 에 있 어 자 웅 (雌 雄 ) 을 겨 루 지 않 고 오순도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 져야 하기에 동정공파 종친회가 더욱 돋 보인듯하다. 11월 27일(음10.10)은 전남 나주시 남 평읍 정광촌의 저존재 후원(後園)에 단 소로 모셔진 1파 군기소감공(휘 지문)의 차남 경( 궝), 손자 홍저(洪貯), 증손 검 (儉), 현손 득춘(得春), 득시(得時)의 제 단에서 각각 제례를 봉행하고, 뒤편 선영 에 모셔진 동정공(휘 선), 청백리공(휘 수지), 진사공(휘 이온), 다음날인 28일 에는 광주 남구 양과동 지산마을 선영에 서 갑산교수공(휘 곤손), 선교랑(휘 후 생), 첨지중추부사공(휘 인), 황탄공(성 균진사 휘 天挺) 등, 29일(음10.12)은 광 주 남구 노대실로의 석류재 뒤편 선영에 서 난계공(휘 종정)의 제향이 환영 원로 종원의집례로각각봉행되었다. 동정공파는 중시조 상서공(휘 선)의 현손으로 판이부상서를 역임하고 응천군 에 봉해지고 시호 충질(忠質)을 받은 휘 휘 신유(臣 찮)의 아 들 6 형 제 중 맏 이 군 기소감공(휘 지문,1파)의 후손으로 군기 소감공(휘 지문)이 어느 시기에 모처에 서 전남 거평(현 문평면)으로 이거 했는 지 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군기소감공이 자리를 잡은 거평에는 함박등(咸朴嶝), 또는 함박동(咸朴洞)으로 불리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세(勢)를 알 수 있을만하다. 특히 광주 남구 양과동 입향 조 교수공은 양과동 향약을 재정하는 등 청렴하고 충의(忠義)의 가풍은 조선조 청백리와 임진왜란에 창의로 이어져 지 역의 향토사에 길이 빛나고 있어 지역 토 반으로 불리는 경주최씨, 장흥고씨와 더 불어 세 성씨 중에서도 으뜸으로 칭송받 고 있 다 . 동정공 휘 선은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 관 교리 지제교 동정(同正)을 역임하며 명성과 덕망이 세상에 크게 떨쳤다. 그리 고 그 의 아 들 수 지 (遂 智 ) 의 字 는 희 안 (喜 安) 호가 지봉(芝峰)이다. 세종3년(142 1)에 출생하여 어머니를 지효(至孝)로 섬기고 제매(弟妹)를 어루만져 우애가 지극했다. 사마시에 급제하고 감찰어사, 세자익위사 좌익찬을 거쳐 예산 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노모를 위해 부임하지 아 니하고 남평 현감으로 치적을 올려 청백 리에 녹선 되었다.뒤에 문과에 올라 홍문 관 교리 지제교,북평사 집의를 역임했다. 사후에 좌찬성에 증직되었고, 보성 유산 사에 배향 되었으며, 아들 오형제(이온, 이량,이공,이근,이신)를두면서크게번 성한다. 청백리 휘 수지의 장남 이온(以溫)은 진사(進士)시에 합격 후 후학 양성에 매 진하였으며, 손자 휘 곤손은 갑산교수이 고,휘 후생(厚生,敎授)휘 인(認,중추부 사), 근(謹, 군자감정) 형제를 두었으며 장남 휘 인(認)은 통정대부 중추부사로 그의 장남 휘 천정(天挺)은 성균 진사로 임란에 거병창의하여 군량을 책임지었 다.그 후손들은 황탄공파(黃灘公派)라하 고 세계를 이루고 광주 남구 양과동에 집 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아우 휘 종정 (宗挺)은 스스로 호를 난계(蘭溪)라 하 고,선조9년(1576)사마시에등과한후사 학 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하며 당파에 휩싸이지 않는 등 그 사람됨을 후한[後 漢]의 유명한 학자 곽림종에 비유되기도 했다. 후에 사림의 천거로 장원서 별제와 계사년(1593)에 황원(현 영암군의 일부) 목사를역임하고,정유재란(1597년)에아 버 지 (휘 認 )와 숙 부 휘 근 (謹 )과 함 께 창 의하여 군량미 등을 모아 해안을 따라 임 금의행재소로향하다영암에서아버지에 게 달려드는 적병을 몸으로 막다 몸에 상 처를 입어 사망하여 광주 효우동 분작산 에치장하고뒤에정려가내려졌다. 한편 동정공파 종친회는 지난 달 22일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해봉 회장의 임기 만료에 따라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을 역 임한 재순 현종을 후임회장으로 추대하 였으며,이번 추향의 제관은 다음과 같다. (초·아·종헌관/축관 順) △동정공(휘 선)-재순, 원갑, 영돈, 영 용. △청백리공(휘 수지)- 현용, 용설, 재 운, 영용. △진사공(휘 이온)-해술, 슬기, 윤진, 용설. △승의랑공(휘 곤손)-동진, 영록, 해술. △교수공(휘 후생)-용선, 윤 진, 영기. △첨지중추부사공-용기, 용진, 재삼. △황탄공(휘 천정)-현용, 동진, 영 록 △난계공(휘 종정)-재순, 재운, 동진, 재환. 함양박씨동정공파가을시향봉행 음10월10일~12일,저존재단소의군기소감공휘之文(1파)및동정공휘선(鮮),아들 청백리휘수지(遂智)등각소파별봉행신임회장재순전(前)한국농어촌공사사장추대 지난 달 29일봉행된난계공시향에참석한 후손들이 한자리에모였다.박재순前한국농어촌공사사장이 동정공묘역에 서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있다.<왼쪽> 박현용 동 정공파前회장이 황탄공묘역에서헌작하고있다. 난계공(휘종정)묘역에서제관들이 제례준비를하고있다.(왼쪽부터재순,영록,동진順) 밀양박씨 문림랑공 세포종중은 지난 1 8일(음10.1) 충북 영동군 심천면 세덕사 추향에참석선조님의음덕을기렸다. 비록 참여하는 성손의 수는 적었지만 남근 원로 고문을 비롯한 종손(宗孫) 종 기 일가와 여러 종원들은 근원을 돌아보 고 나를 찾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행사에 참례하여 정성껏 봉행되는 제례를 익히 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문중의 각종 행사에 벤치마킹으로 더 발전하는 종회를 만든다는 자신감을 갖기도했다. 영동 세덕사는 이날 밀양박씨 비조(鼻 祖)인 복야공(僕射公 휘 彦仁)과 그 장자 (長子) 문림랑공(文林郞公,휘 직신)을 비롯 이하 5대(代)와 대제학공(大提學 公, 휘 시용)과 그 아들 판서공(判書公, 천석)판윤공(判尹公,휘 천귀)의 삼부자 (三父子)와 난계(蘭溪, 휘 란), 국당(菊 堂, 휘 흥생), 이요당(二樂堂, 휘 흥거)의 합동세사(合同歲祀)를 봉행, 이날 참례 한 세포문중의 종손 종기 현종은 복야공 제향아헌관으로헌작하였다. 전남 장성군 서삼면 세포마을의 입향 은 400여년 전 복야공(휘 언인)의 15世 휘 희주(希朱) 公으로 전남 영광 군동에 서 입향 이후 13代에 걸쳐 250여 호로 번 성하였으나 각기 생활터전으로 이거함에 따라현재는10여호가남아있다. 아헌관으로 헌작한 종기 현종은 입향 조의 16세 종손으로 서울의 증권회사 지 점장으로 퇴직 후에도 종중의 대소사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특히 부인 김수영 여 사(淸風人)는 소문난 효부로 종부로서의 손색이 없어 종중 안팎에서 칭송이 자자 하다. 밀양박씨문림랑공장성세포문중영동세덕사참례 종손종기복야공제향아헌관으로헌작 복야공 제향에 아헌관으로 헌작한 종기 종손 부 부(왼쪽)를 남근 원로고문 부부가 축하하며 함 께하고있다. 뷺가지 사이에 비치는 달빛은 높은 선비의 뜻이요 나무 앞에 부는 바람 외로운 신하의 절개 같네뷻 포은 정몽주 선생이 죽은 공(竹隱公)이 지은 ‘죽은 원운(그린 그림자는 달같이 박고맑은 소리는 귀에 들리네)’에 대해 답(答)한 시(詩)로 곧은 절개와 충절이 뛰어난 밀직부원군(휘 중미, 호 죽은)의 정유년 시향이 지난 달 24일(음10.7) 오전10시 경북 청도군 풍각면 월봉리 산7 39번지묘역에서엄숙봉행되었다. 밀직부원군 제향 이후에는 두 아드님인 화령군(和寧君, 휘 ) 계(系)와 대사헌공(휘 )계(系)이하선조님제향이각각봉 행되었다. ▶제향선조세계도참조 밀직부원군의 휘는 중미(中美) 밀성대군의 15世 支孫(시조4 4世孫)이며, 工部尙書(義臣)의 次子 소감공(少監公 휘 允)의 6 世孫이다.태사공(太師公 휘 彦孚)의 8世孫이기도 하다.공(公) 은 일찍부터 포은 정몽주 선생과 익재 이재현 선생등과 교유하 며강론(講論)하였다. 고려 29대 임금 忠穆王(충목왕 서기1344~1348년) 때 문과에 급제하여 중서령(中書令)을 역임하였고 고려 31代 恭愍王(공 민왕 서기1351년~1374년)때 안우 정세운, 이방실 등과 함께 홍 건적을 평정하였으며, 공민왕 14(1365년)년에 좌사의대부 판 전교사와 보문관제학과 순성보리공신에 녹훈되고 대광보국 숭 록대부(純誠輔理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에 제수되었고,또 밀 직부원군(密直府院君)에 봉해졌다.태조가 등극하여 여러 차례 불렀으나나가지아니하고卒하니왕이 禮葬(례장)하고시호를 文肅(문숙)이라증(贈)하였다. 밀직부원군은 두 아드님을 두었는데 장남은 화령군(휘 희)이 고 차남은 대사헌공(휘 해)으로 후손들은 경북 청도,대구 시지 동,경산,달성구지,영천,울산,경남 거창,창녕,양산 등지에 산 재해 있으며, 임란 의병장 대암공 휘 성(惺), 성종임금이 “청렴 하고 명량하고 맑고 깨끗하여 얼음(氷)과 옥(玉)에 비유해도 흠이 없다.”라고 극찬하며 특별히 청풍당(淸風堂)라 시호한 휘 영손(英孫),무인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노계 박인로 선생,광복 군총사령고헌박상진의사등이밀직부원군의후손이다. 한편 이날 제례는 집례 기만(基滿), 초헌관 훈일(勳一, 23代 宗孫), 아헌관 해동(海東), 종헌관 세영 (世榮, 회장), 축 규찬 (奎燦),봉작 성동(聖東),사준재양(在洋,총무이사)현종이각 각소임을맡았다. 밀직부원군파묘봉재(竗峯齋)시향봉행 밀성박씨12중조중유일하게유택이보존된밀직부원군을비롯10位 제향에 앞서 훈일 초헌관이 진설을 점검하고 있다. 특히 제향에 참례한 후 손들이 단정하게차려입은제복이 눈에띤다. 밀직부원군제관(왼쪽부터기만,규찬,훈일,해동 ,세영,재양順) 성원에감사드립니다 새로운 10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성손여러분과 함께 만들어온 한빛신문이 창간 11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한빛신문의지난 11년은 전국 성손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고 성씨 신문을 선도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그리고이제새로운10년은신라시조왕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일깨우는 역할과 후손들에게 훌륭한 보학의 자습서가 될수 있도록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할것을다짐합니다.다시한번성원에감사드립니다. 임직원일동 신년 연하(年賀)광고 및창간11주년 축하광고 로후원하여주시면고맙겠습니다. ◆후원하여주신분 본보박권필고문100만원,대구달성(행산공后) 본보박래환고문20만원광주(도평의사공후돈재공파 도유사) ※ 한빛신문의 성손여러분의 구독료와 후원금으 로만들어지고있습니다. ※구독신청및기사제보(광고접수)053-588-7300,FAX581-0067 E-mail= parkss1012@hanmail.net ※구독료 및후원계좌453013-55-000691농협예금주한빛신문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