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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朴 氏 新 羅 年 譜 내어 드립니다 하였다. 60년 계해(癸亥)에 두마리의 용이 금성에 우물속에 나타났는데 폭우가 쏟아지고 궁성의 남문이 낙뇌하다. 익년(翌年) 3 월 에 왕께서 훙서(薨逝) 하시고 칠일이 지나 알영왕비께서 이어서 훙(薨)하시니 태자 남해(南解) 께서 왕위에 오르니 몸이 장대하고 성품이 침중(沈重)하고 후덕(厚德)하 며 지혜가 많으시다. 시조왕을 국도 남쪽 칠리인 담암사 옆 남 정 숲 안 에 묘좌에 장사하고 왕비도 같은 곳에 장사 하였다. 7 월 에 낙랑군이 침입해 서 나라를 버리시고 덕이 없는 내가 잘못 왕위에 오르매 이웃나라가 침 입해 왔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라고 하시니 근신(近臣)이 말하기를 “적병이 우리의 국상을 다행삼아 감치 쳐들어온 것이오니 하늘이 반드 시 도우지 않으시리다.” 하였더니 적병이 과연 물러갔다. 삼가 상고 하건대 성덕을 지닌 임금님이 왕위에 계시니 사방으로 오랑캐 가 모두 복종(服從)하고 신기(神奇)한 보화가 저절로 이르는 것이므로 옛날에 성왕(聖王)은 사람을 복종시키려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복종하게되고 귀이한 보화를 구하려 하지 않아도 보화가 저절로 오게 되 나니 삼묘씨(三苗氏)가 스스로 와서 항복하였고 도산(塗山)의 모임에 찬 하의 제후가 옥백을 받들어 내조 하였고 월상씨(越裳氏)가 흰꿩을 곡물 로 바친 것이 그 증험이다. 옛적에 우리 시조왕께서 덕을 닦아 나라를 다스림에 왜인(倭人)이 군사를 돌리고 변한이 줄곳 항복해 낙 랑 이 군 사 를 철 회 시 키 고 옥저가 말을 바치고 신인이 금척을 올렸으니 이것이 어 찌 힘으로 구할 수 있겠는가 하우씨(夏禹氏)와 주공(周公) 덕이 없고서 는 이루지 못할 것이 다. 이러므로 6 0년의 왕위에 계신동안 무기 를 사용 함이 없어 백성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고 태고 때에 즐겁게 평화로운 세 월의 삶을 누리게 한 것이 후세에는 몰 수 없는 태평성대를 이루게 된 것이다. l 신라시조대왕기(삼국유사) #三國遺事1卷-1紀異-新羅始祖赫居世王-01 辰韓之地, 古 有 六 村 , 一 曰 , 閼 川 楊 山 村 , 南 今 曇 嚴 寺 , 長 曰 謁 平 . 初 降 于 瓢 * < 巖 , 嵒 > 峰 , 是 爲 及 梁 部 李 氏 祖 [ 弩 禮 王 九 年 置 , 名 及 梁 部 , 本 朝 * 大 { 太 } 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