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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朴 氏 新 羅 年 譜 의 법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5년 무진(戊辰) ( 前 漢甘露元年 B.C 53年)에 용이 알영정(오릉안에 있음) 에 나타나서 오른편 갈빗대 밑에서 여아를 낳았으니 어는 할머니가 거둬 길러서 우물 이름으로 알영이라 이름 하였더니 장성하여 용모가 덕성스 로워 시졲;서 이를 들으시고 왕비로 삼으시 니 극히 현숙하여 내를 잘 하 시니 사람들이 이성(二聖)이라고 말하였다. 권근(權近) 양촌(陽村)이 말하기를 국가가 훙할 때에 내조의 아름다움이 있나니 처음을 바로잡아 덕화를 베푼 것이 지극하다. 알영이 시조왕의 비(妃)가 되매 백성들이 칭송하였으니 반듯이 덕이 높아서 백성의 마음 을 감복시켰기 때문이다. 삼가 상고하건데 주(周)의 문왕이 태사를 왕비로 맞이하매 시인(詩人)이 군자의 좋은 짝이라고 찬미(讚美)하였고 우리 시조왕 께서 알영을 맞이 하므로 백성들이 이성(二聖)이라 불렀으니 이른바 만화(萬化)의 근본이 요 백복(百福)의 근원이 여기에 있지 않은 가 그 로 므 로 시 경 ( 詩 經 ) 에 갈 담 (葛覃) 종사(螽斯)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복손과 지손(支孫)이 백세에 번영한 것이니 우리 시조왕의 후손이 또한 길이 번창하게 된 것이 성비 (聖妃) 알영씨께서 처음부터 덕화를 펴서 후손에게 복을 주신 것이 주나 라의 태사와 함께 짝 할 만 하다. 권양촌근(權陽村近)이 말하기를 업적을 살피는 것은 임금으로서 할 일이 다 옛날에는 봄철에 경작(耕作)하는 것을 살펴서 부족(不足)함을 도와주 고 가을에는 수확(收 穫 )하는 것을 살펴보 고 넉넉치 못한 것을 도우나니 한번 놀고 한번 즐기는 것이 모두 백성을 위하지 않음이 없다. 이제 시 조왕이 육부를 순시하 여 농 상 을 권 장 함 은 옛 임 금 이 지방을 순 행 (巡行) 하여 보조(補助)하는 법에 가까우나 부인은 외부일이 없으니 규문(閨門) 을 나가지 않는 것인데 왕비가 따라서 순행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삼가 상고하건대 백성들이 농사하지 않으면 굶주릴 것이고 양잠 하지 않 으면 헐벗을 것이니 종상을 장려함은 나라 의 제 일 요 긴 한 일 이 다. 어찌 어진 임금이 위에 있으면서 백서으로 하여금 굶주리고 헐벗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주공(周公)은 농사일이 괴롭고 어려움을 말씀하셨고 주례(周 禮)에는 왕비가 친히 양잠하는 일이 실려 있으니 이것은 임금된 자로 백 성의 괴로운 일을 고 루 알고서 인도하고 거느리게 하는 바이다. 우리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