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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朴 氏 新 羅 年 譜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은 일성왕의 태자이시니 처음에는 아달라 이사금이 라 하였다. 왕위에 계신지 30년이요 능은 국도 15리 배일산 묘 좌 다. 계 비(繼妃) 석씨(昔氏) 능은 금서문 밖 자좌이다. 원년 을미에 친히 시조묘 에 제사 지내다. 10월에 아찬 길선이 반역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백제로 도망가니 계원(繼元)으로 이찬을 삼고 군사와 정무(政務)를 맡게하다. 3년 병신(丙申) 계림령(鷄立嶺)의 도로(道路)를 개통하다. 4년 정유(丁酉)에 왕께서 친히 장령진(長嶺鎭:강릉부근)에 순행하여 수비 (守備)하는 군사를 위로하고 전투복을 하사하다. 이해에 영일현(迎日縣) 을 설치하다. 처음엔 동해가에 영오랑(迎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부부 가 함께 살았는데 이때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없으므로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해와 달의 정기가 모두 동쪽섬에 가버렸습니다. 하니 왕이 사 자를 보내 해빛을 되돌려 주기를 청하니 영오(迎烏)가 말하기를 내가 이 곳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돌아갈 수 있으니오 하고 세초(細草: 비단) 한필을 주면서 짐의 왕비가 짠 비단이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 지 내라 하므로 사자(使者)가 돌아와서 그대로 아뢰고 제사를 지냈더니 해 와 달이 다시 밝게 되었다. 그 비단을 어고(御庫)에 소중히 간직하고 귀 비고(貴妃庫)라 이름하고 제사하던 곳을 영일현이라 하였다. 5년 무술(戊戌)에 죽령(竹嶺)에 길을 개통하다. 이해에 왜인이 와서 문안 (問安)하다. 9년 임인(壬寅)에 사도성 영덕(沙道城:盈德)에 가셔서 수비군을 위로하다. 12년 을사(乙巳) 아찬 길선(阿飡吉宣)이 백제에 도망한지 오래이므로 왕 이 편지하여 돌려 보내기를 꾸짖으시니 백제가 듣지 않음으로 왕이 노하 여 군사를 출동시켜 공격(攻擊)을 가하고 철병하여 돌아오다. 14년 정미(丁未)에 백제가 서쪽 변장의 두성을 함락시키고 천인을 포로 해 가거늘 왕이 일길찬 흥선(一吉飡 興宣)에게 명하여 2 만 명 의 병 을 거 느리고 공격하게 하고 왕이 친히 기병을 이끌고 한수(漢水)로부터 처들 어가니 백제가 크게 두려워하여 노획한 것을 돌려 보내고 화친(和親)하 기를 청하였다. 20년 계축(癸丑)에 왜인이 사자(使者)를 보내 문안하다. 321년 갑자(甲子) 3 월 에 왕 이 훙 ( 薨 )하시니 왕위를 이을 만한 사람이 없 는지라 왕으 아들 벽방(碧芳)이 일찍 죽고 손자 무영(武英)이 있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