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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朴 氏 新 羅 年 譜 l 신라 제6대 지마왕기(祗犘王紀) 신라 제6대 지마왕은 파사왕의 적자(嫡子)시니 처음에는 지마 이 사 금 ( 祗 犘尼師今) 또는 지미(祗味)라고도 하였다. 왕위에 계시기를 22년이요 수 (壽)는 미상, 능은 국도 남쪽 십리에 포석정 건지동 을좌이며 왕비는 김 씨니 애례왕후(愛禮王后)시며 능은 영산자좌(寧山子坐)이다. 원년 갑자 오봉원년 4 월 병진(丙辰)에 왕위에 오르시니 그때 나이 13세이다. 거서 간(居西干) 혹은 거슬감이라 하니 진한의 말에 귀인의 존칭이다. 국호(國 號)는 서라벌이라 하였다. 3년 갑인(甲寅)에 큰 물이 지므로 왕은 죄수들을 보살펴 사죄(死罪)를 제하고 모두 놓아 주었다. 4년 을묘(乙卯) 2월에 가야가 남변을 침범하니 왕이 보병(步兵)가 기병을 이끌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너니 가야의 복병이 여러볍으로 포위 하거늘 왕이 힘을 다하여 쳐부수고 포위를 뚫고 물러 갔으나 이로부터 두 나라 는 다툼이 쉬지 않았다. 5년 정사(丁巳)에 장수를 보내 가야(伽倻)를 침노할새 친히 정병(精兵) 1 만 명 을 이 끌 고 뒤따라 가니 가야가 성을 굳게 지켜 항거 하거늘 마침 장 미비를 만나서 회국하다. 10년 신유(辛酉) 1 월 에 익 종 ( 翌 宗 ) 으 로 이 찬 을 삼 다. 이해에 왜병(倭兵) 이 침노해 오다. 11년에 큰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와서 나무를 꺽고 기와를 날리니 도성 (都城) 시람들이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트려 왜병이 침입한 다 하거늘 이찬 익종에게 명하여 효유(曉諭)하여 그치게 하다. 14년 을축(乙丑) 봄에 말갈(靺鞨)이 북경을 침입하여 아전과 백성을 죽 이고 약탈(掠奪)하고 가을에 또 대령책(大關嶺)을 습격하여 이하 강릉(江 陵)를 지내거늘 왕이 백제의 구원을 청하니 백제왕이 다섯 장수를 보내 어 구원하여 말갈(靺鞨)을 물리치다. 말갈은 옛날 숙신씨에 끼친 종족(種 族)으로 그 후손이 여진(女眞)김과 청(淸)이 되었다. 23년 갑술(甲戌) 왕이 훙(薨)하시니 아들이 없는지라 유리왕의 맏아들 일성(逸聖)이 왕위에 올라 지마왕을 국도 남쪽 십리 포석정 건지동에 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