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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朴 氏 新 羅 年 譜 (慈充)이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 이 사 금 (尼師金)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잇금[齒 理]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했다. 처음에 남해왕(南解王)이 죽자 그 아들 노례(弩禮)가 탈해(脫解)에게 왕 위를 물려 주려 했다. 이에 탈해(脫解)가 말하기를, "나는 들으 니 성 스 럽 고 지 혜 있는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한다"하고 떡을 입으로 물어 시험해 보았다. 고 전 ( 古 典 )에는 이와 같이 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임금을 마립간(麻立 干)이라고도 했다. 이것을 김대문(金大問)은 해석하기를, " 마 립 간 ( 麻 立 干 ) 이 란 서 열 을 뜻하는 방언(方言)이다. 서열(序列)은 위(位)를 따라 정 하기 때문에 임금의 서열은 주(主)가 되고 신하의 서열은 아래에 위치한 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했다. 사론(史論)에는 이렇게 말했다. "신라왕(新羅王)으로서 거서간(居西干)과 차차웅(次次雄)이란 이름을 쓴 이가 각기 하나요, 이사금(尼師金)이라고 한 이가 열 여섯이며, 마립간(麻立干)이라 한 이가 넷이다. 신라 말기의 명유(名儒) 최치원(崔致遠)이 < 제 왕 연 대 력 ( 帝 王 年代曆)>을 지을 적에는 모두 모왕(某王)이라고만 하고 거서간(居西干) 등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 것은 혹시 그 말이 야비해서 부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가. 그러 나 지금 신라의 일을 기록하는 데 방언(方言)을 모두 그대로 두 는 것도 또한 마땅한 일일 것이다." 신라 사람들은 추봉(追封)된 이들을 갈문왕(葛文王)이라고 불렀는데, 이 일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남해왕(南解王) 때에 낙랑국(樂浪國) 사람들이 금성(金城)을 침범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또 천봉(天鳳) 5 년 무 인 ( 戊 寅 ; 18)에 고 구려(高句麗)의 속국인 일곱 나라가 와서 항복했다. l 신라 제3대 유리왕기(儒理王紀) 신라 제3대 유리왕은 남해왕의 태자이시니 처음으로 유리 이사금(儒理尼 師今)이라 일컫다. 왕위에 계신지 33년이요 수(壽)는 미상, 능은 선능(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