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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朴 氏 新 羅 年 譜 도 한다. 후세에 와서 드디어 신라(新羅)라는 국호로 정했던 것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던 어느 날 왕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7 일 뒤 에 그 죽 은 몸 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그러더니 왕후(王后)도 역시 왕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한다. 나라 사람들은 이들을 합해서 장사지내 려 했으나 큰 뱀이 나타나더니 쫓아다니면서 이를 방해하므로 오체(五 體)를 각각 장사지내어 오릉(五陵)을 만들고, 또한 능의 이름을 사릉(蛇 陵)이라고 했다. 담엄사(曇嚴寺) 북릉(北陵)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太子) 남해왕(南解王)이 왕위를 계승했다. l 신라 제2대 남해왕기(南解王紀) 신라 제2대 남해왕은 시조왕의 맏아들이시니 처음에 차차웅이라 하셨다. 재위 20년, 수(壽)는 74세 이시다. 능은 시조왕릉과 같은 곳 묘좌이다. 원년 갑자(甲子)에 왕비 김시를 봉하여 운제왕후를 삼으시고 다음 왕비 석씨는 아루왕후라 하다. 3년 병인(丙寅) 정월에 시조왕의 사당을 세우고 사시로 친히 제사 하실 때 왕의 누이 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장하게 하다. 5년 무진(戊辰에 왕께서 석탈해(昔脫解)의 어질다는 말을 듣고 맏딸로 그의 아내를 삼게 하였다. 21년 을유(乙酉) 9 월 에 왕께서 훙서 하시니 태자 유리(儒理)가 왕에 오 르다. 왕의 임종에 태자 유리와 탈해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은 후에 박씨와 석씨 두 성씨 중에 나이 많은 사람이 왕위를 이으라 하시고 돌아 가셨는데 유가 탈해는 덕망이 있다하여 왕위를 사양하니 탈해가 말하기 를 신기대보(神器大寶:왕위를 말함)는 용렬한 사람의 감당할 바 아니다. 내가 듣기로는 어진 사람은 이딸이 많다 하고 떡을 물어서 시험한 즉 유 리의 이빨이 더 많은 지라 드디어 왕위에 올라 남해왕을 선릉(宣陵)의 영역(塋域)안에 장사 하였다. #三國遺事1卷-1紀異-第二南解王-01 南解居西*千{干} , 亦 云 次 次 雄 , 是 尊 長 之 稱 , 唯 此 王 稱 之 . 父 赫 居 世 , 母 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