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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11월30일 목요일 6 (제131호) 관향조 종친회 시조대왕 이후 500만 성손의 종 손(宗孫) 가(家)인 은산부원군을 비롯 아드님 휘 천경, 손자 송은공 (휘 익) 증손 우당공(휘 융), 인당 공(휘 소), 현손 감헌공(휘 진) 등 5대(代) 6위(位)의 시향이 지난 18 일 경남 창녕군 추원재와 경남 밀 양의 보본재(회장 창제)에서 각각 봉행되었다. 이날 제례는 17일 밤 입재하여 개좌 및 총회를 개최하고 오전 일 찍부터 은산부원군 묘소에서 종식 집례관의 집례로 순광(淳光) 초헌 관, 주대(柱大) 아헌관, 철수(哲 洙) 종헌관 순으로 헌작하고 석태 (錫泰) 축관의 독축으로 40여분에 걸쳐 봉행하고, 이어 밀성부원군 (휘 천경) 묘소에서는 초헌관 남 근(南根), 아헌관 영광(永光), 종 헌관 재석(在錫) 순으로 헌작하고 삼옥(三玉) 축관, 원환(元煥) 전 회장이집례를보았다. 이후장소를밀양시청도면고법 리 보본재로 옮겨 개좌 후 묘소로 이동 송은공을 비롯 아드님 우당공,인당공에 이어 손자 감 헌공의제향이이어졌다. 은산공파 대종회 용권 회장은 전날 밤 개최된 총회에서 숙원사업인 추원재지발간이종원 여러분들이성원에힘입 어 오는 1월경 초판에 이어 3월중 배포할 수 있도록 순조롭 게 진행되고 있다며 추원재지 발간 현황을 전달하고 향후 추원재 정당에 문을 달아 먼지 유입을 막고 마당에 깔린 인 조 메트를 걷어내는 사업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진행할 것이라고밝히고협조를당부했다. 이어 제주도에서 참례한 성손들을 소개하며 오직 숭조의 일념으로 멀리 바다 건너 이곳 창녕까지 찾아준 일가분들 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며 큰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 다. 은산부원군파는 크게 6개 파로 나뉜다.장남인 고려 절신 송은공의 아들 우당,인당,아당,졸당공의 4개 파와 은산부 원군의 차남 전객령공, 삼남 순찰사파 등 6개파로 구성된 다. 은산부원군의 아드님인 송은 박익(松隱 朴翊)선생은 고 려 말 충신(忠臣)으로 팔은(八隱)의 한사람이다. 휘는 익 (翊)이며 초명은 천익(天翊)이고 자는 태시(太始)며 호는 송은(松隱)으로 은산부원군 영균(銀山府院君 永均)의 장 자이다.1332년 (충숙왕 복위 1년)에 밀양 삽포에서 태어났 다. 1360년 (고려 공민왕 9년)29세의 약관으로 입지잠(立志 箴,뜻을 세우는 글)을 지어 학문의 뜻을 세웠고, 또한 지신 잠(持身箴)을 지어 수신지도(修身之道)를 깨우쳐 학문의 근본을세웠다. 고려 공민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문학(翰林文學) 을 시작으로 소감(少監)을 지내고 1386년 (고려 우왕12년) 에 동경판관(東京判官)과 예부시랑 (禮部侍郎)을 역임하 였으나 공양왕대에곧관직을그만두고 밀양으로 낙향하였 다. 낙향해 있던 선생은 정몽주의 권유로 공양왕 말년에 다 시상경하여잠시예조판서를역임하였으나이성계 세력이 정몽주를 살해하고 조선왕조를 개창함으로써 절의(節義) 을 지키며 이성계가 공조(工曹), 형조(刑曹), 예조(禮曺), 이조판서(吏曹判書)와 좌의정(左議政)을 제수하며 다섯 차례나불렀으나나아가지않았다. 지난 2000년 9월 경남 밀양시 고법리 소재 송은선생 고분 에서 벽화가 발견되어 화재를 모았다.그 후 선생의 유택은 2005년 2월 5일 국가 문화재 사적 제459호로 지정되었다. /박순제 명예기자(경남산청군지부) 밀성박씨추원재추향봉행 은산부원군(휘 영균)과 아들 밀성부원군 (휘 천경), 추원재지 발간 작업 순조롭게 진행 은산부원군제관,왼쪽부터순광,주대,철수,종식,석태,응상총무이사順 개좌 장면, 추대된 조사와 공사원이 역대 헌관록, 도기 등을 놓고 계파 별지역별안배하며헌관을인선하고있다. 박용권회장 조선시대 관리들의 표상이 된 졸당공(휘 총) 시향이 지 난 22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 봉기리 선영(先塋)의 묘소에 서 100여명의 후손들이 참례한 가운데 정제(丁濟) 집례의 창홀에 따라 종손 인제(麟濟) 초헌관의 초헌례에 이어 응 상(應相) 아당공 종중 前 회장, 춘재(春在) 前 신계서원 유 사의 아헌과 종헌으로 각각 헌작하고 종도(鍾道)재경종친 회장의독축으로엄숙봉행되었다. 이날 제례는 전날 밤 봉양재(鳳陽齋)에 입재(入齋)후 개 좌를 열어 형제(亨濟)현종을 직일에 천거한 뒤 창재, 종도, 정제 현종을 조사(曹司)에 추대하고 공사원 5명(춘재, 현 재,현수,신재,경묵)을 선출한 뒤 도기(到記)와 역대 헌관 분정표를 보며 제관을 천거하는 엄격한 의식에 따라 진행 되었다. 채회(彩會) 대종회장은 제향에 앞서 천권(薦券)을 제관 에게 교부하고 제향에 소홀함이 없도록 각자 임무를 충실 히 수행해 줄 것을 당부하고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신심 신 관편(愼心 愼官篇)을 자녀는 물론 지인들에게도 알려 줄 것을당부했다. 졸당공께서 남긴 ‘신심 신관편(愼心 愼官篇)’ 백번을 들 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공직자는 물론 이시대를 살아 가는 모든 이들이 지켜야할 규범이기도 하다. 특히 선생의 청렴함또한배어있어지난해에도 소개한바 있으나 다시한 번 소 개 해 본 다 . 【사람이 세상에 살아감에 있어서 벼슬하지 못한 자는 비 록 걱정이나 마음은 반드시 편할 것이요.이미 벼슬한 자는 비록 기쁘다 해도 마음은 반드시 걱정일 것이다. 벼슬아치 가되어백성을다스릴땐마음을굳게잡음만함이없다. 벼슬에 있으면서 욕심을 줄이지 않으면 반드시 천성(天 性)을 상실 할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벼슬은 높으면 위태롭고낮으면편안하다. 위태하고 편안함이 비록 다르지만 그 실상은 하나의 이 치다.위태함을 알면서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험한 길 쪽에 빠 지 고 편 안 함 을 알 고 깨 달 으 면 가 히 족 (足 )함 을 안 다 하 리라. 무릇 녹봉(祿俸)은 마땅히 절용(節用)하여 가벼이 쓰지 말아야 한다. 마음껏 맡은 일에 몸 바치고 지극히 청렴(淸 廉)하고 지극히 근면(勤勉)할 것이니 청렴하면 사람들이 복종하고 근면하면 일이 잘될 것이다.무릇벼슬에있는 자 어찌 털끝만한 비리(非理)라도 그 사이에 작용시켜 나의 본심을 어기리오. 공무(公務)에 몸 바쳐 직책을 다한 뒤에 야 가히 벼슬과 녹(祿)의 위태함을 면할 것이며 내 본심의 덕(德)을 온전히 하리라.조심할 지어다 조심할 지어다.(원 문:人於處世也에 未仕者雖憂나 心必得安이요 已仕者雖喜 나 心必生憂라 爲官治民이 幕如存心이니 仕不寡慾이면 必 喪天性이라 可不懼哉아 位高則危오 位卑則安이니 危安이 殊而其實은 一理니 知危而不覺則必陷於險路요 知安而覺 之則亦可以知足矣라 凡此祿俸을 切宜節用이요 不可輕用 이니 盡心奉職하야 克廉克勤하라 廉則人服이요 勤則事竣 이니 凡居官者豈可以一毫非理요 干其間而違吾素心哉아 奉公盡職然後에 可以免仕祿之危며 可以全本心之德이니 愼之哉愼之哉라)】 한편 이날 졸당공의 제향 후에는 선생의 아들 형제(승문, 희문)의 후손들이 장소를 옮겨 장남인 휘 승문(承文, 가선 대부동중추부사)의 묘역 아래의 봉산재와 차남 휘 희문(熙 文, 태인현감)의 재사 산천재로 각각 이동 개좌를 열고 헌 관을분정하여제향을받들었다. /박순제 명예기자(경남산청군지부) 밀성박씨졸당공(휘聰)시향봉행 신심신관편(愼心愼官篇)공직자의윤리와도덕의길잡이되어븣‘무릇녹봉(祿俸)은마땅히 절용(節用)하여가벼이쓰지말아야한다.마음껏맡은일에몸바치고지극히청렴(淸廉)하고 지극히근면(勤勉)할것이니청렴하면사람들이복종하고근면하면일이잘될것이다.’ 제향에앞서채회회장(좌측)이인제초헌관에게천권을교부하고있 다. 이날 제향에 초헌관을 맡은 인제 종손은 전날 가진 총회 결산보고 를 들은 후 재정이 빈약함을 알고 즉석에서 1백만원의 특성금을 전달 하여훈훈한 감동을선사하기도하였다. 졸당공 묘역 제례광경, 묘소는 고려말 조선초 봉분 형태를 띠고 있으 며묘소의둘레석에‘이조참판졸당공휘총지묘’의글씨가오랜세월 의풍파에도고스란히남아있다. 밀성박씨 행산공파 추향제례가 지난 19일(음10 .2) 오전 8시 올 들어 가장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전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후손들이 참례한 가운데 경남 밀양시 부북면 송악길 18 행산재에서 엄숙봉 행되었다. 이날 제례는 전일 입재(入齋)하여 직일(直日) 로 추대된 도흠(度欽) 전(前) 숭덕전참봉의 주재 하에 선출된 조사와 공사원이 추대한 각 헌관의 헌 작으로 40여분에 걸쳐 행산재 뒤편에 모셔진 행산 공(杏山公), 도은공(挑隱公) 소감공(少監公) 삼 부자의 단소(壇所)에서 선조의 절의정신과 충효 사상을기렸다. 행산재 제향 후에는 부북면 후사포리 마을 앞에 세워진 도은공의 아드님 찬성사공(휘 臣悅), 손자 진사공 (휘 時擧), 증손 감찰공(휘 宗枝) 등 3代 선조 단소에서 제 향이이어졌다. 행산공파 종중은 절의정신의 표상이고 효(孝)의 본보기 가 되는 가문(家門)으로 불려진다. 이는 높은 학덕을 겸비 하고 있는 행산공의 삼부자를 가전삼학사(家傳三學士)라 칭하고, 공민왕이 하사한 광효(光孝) 두 글자는 효(孝)의 가문임을엿볼수있다. 행산공(杏山公)은 양효공(良孝公) 간(幹)의 차차(次子) 로서 은산부원군 휘 영균의 동생으로 고려 충혜왕 때(1340 년경)태어나고,휘(諱)는 세균(世均)으로 고려조의 보문각 태학사이며 전문형(典文衡,정2품)과 중국 元나라에서 한림 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귀국하여 벼슬이 평장사(平章事) 에 오르고,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사후 시호 (諡號)는 충정(忠靖)이고, 아들 도은공(挑隱公, 휘 文彬)과 소감공(少監公, 휘 文翊) 형제는 포은(정몽주), 목은(이색) 등의 문인들과 교류하는 등 높은 학덕으로 목은 선생의 시 (詩)에 도 전 해 지 듯 당 대 의 거 유 (巨儒 )임 을 알 수 있 다 . 그러나 행산공(杏山公), 도은공(逃隱公) 소감공(少監 公) 삼부자 모두가 함께 이조개국에 참여 하지 않았고, 그 후 정변으로 찬성사공 삼부자의 묘소마저도 실전되고, 또 손자(6분) 모두 피신하여 심산유곡에 은둔하면서 역시 묘 소를 실전하여 지난 2012년 현 중희(仲熙) 대종회장이 제 단건립 추진위원장을맡아종원들의특성금으로 아름다운 면모를 갖춘 제단을 설치하고 추원 보본의 정성을 다하고 있다. 찬성사공의 휘(諱)는 신열(臣悅)이며 어려서 부터 깨달 음이 빨라 일찍이 생원시에 오르고 문장과 기절(氣節)이 뛰어나 세상이이름을 떨쳐 찬성사(贊成事)에 증직되었고, 아들 진사공의 諱는 시거(時擧)이고 진사(進士)에 오르고 학문과 덕행절의(德行節義) 널리 알려진 학자이고, 손자 감찰공의 휘는 종기(宗技)이며, 홍문관 정자와 사헌부 감 찰을지냈다. 한 편 이 날 제 례 에 앞 서 중 희 회 장 과 직 일 을 맡 은 도 흠 전 숭덕전참봉은 오집사에게 천권(薦券)을 교부하고 참례한 성손들에게비록 쌀쌀한 날씨지만 정성을 다해주길 당부했 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밀성박씨행산재추향봉행 가전삼학사(家傳三學士)로칭하는높은학덕과절의를지킨 행산공삼부자와도은공의아들을비롯손자,증손등6대(代) 도흠직일(直日)과 중희 회장이 헌관과 참례자들에게제례의식을지도하며엄 숙한 봉행을주문하고있다. 행산공제단 권흠초헌관(전국회의원)이 전폐례를올리고있다. 조선 초 진사에 오르고 그 뒤 효행으로 추천되어 예조정랑(禮曺正郞)을 지낸 아 당공(휘 調)시향이 지난 21일 진주시 금사 면 속사리 물언재 옆에 모셔진 제단에서 15 0여 성손들이 참례한 가운데 분정된 오집 사에 대해 천권(薦券)을 교부하고 제례절 차와 예절을 지도한 수 11시 정각 응상 회 장(집례)의 창홀에 따라 해원(海元) 부회 장이 초헌관으로 분향과 전폐례에 이어 첫 잔을 올리는 초헌례에 이어 박씨대종친회 진주시지부 정식 회장의 아헌례, 아당공의 동생인 졸당공의 후예인 맹제 前 교장의 종 헌례가 각각 이어지고 효근 축관의 독축으 로엄숙봉행되었다. 이날 제례는 평소에 명예나 이익에는 뜻 이 없었던 선비로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산수 자연 속에 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매진했던 아당 선조와 아들 흥문(興 文), 손자 의손(義孫), 증손 한(瀚), 현손 인대(仁垈), 5대 손 훤(萱), 6대손 사림(思林), 사운(思雲), 사우(思雨) 등 9 位선조합동제향으로모셔졌다. 아당공파 대종회는 장묘문화 및 제례문화 혁신을 가져오 면서 많은 종중이 벤치마킹을 하고 있어 이날 제례에도 주 벽의 잔을 먼저 올리고 큰 잔에 조롱박잔을 띄우는 것으로 함께 합사(合祀)하는 선조님을 위한 잔을 올리는 제례를 엿보며토의하는광경을엿볼수있었다. 특히 890여위(位)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물언재의 합 동시향은 음력 4월 1일 봉행되면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후 손들의특별한날이된다. 한편 이날 제향 후 가진 총회에서는 감사 및 결산보고에 이어 해원 부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래진 감사를 부회장으 로, 래진 감사의 후임으로 유진 이사를 추대하는 임원개선 안을 상정 처리하는 과정 또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참석 자들 또한 밝고 환한 모습은 아당공 선조의 유훈이 새겨 있 는듯하였다. 이날 이임하는 응상 회장은 12년 전 총무를 맡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혁신을 통해 변화를 가져왔다. 쇠락한 물 언재를 중건하 고 매장문화로 인한 묘지관리 의 어려움을 타 파하기 위해 화 장을 권장하여 위패를 봉안하 여 합동제사를 통해 종원들의 화합을 이끌었 고, 밀양 밀성재를 비롯 창녕의 추원재, 고법 의 보본재 등 에적극참여하면서아당공파종회를부각시켰다. 응상 회장은 이임사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종원들의 성원 속에 가능했다며 모든 공을 종원들에게 돌리고 종중의 발 전은 적극적인 참여만이 뒤따른다며 모든 종사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으며, 신임 해원 회장은 수십여년 동안 함께하며 총무와 재무,부회장 등을 역임해 온 분으로 이날 무거운 중책을 맡아두려움을느낀다면서도성원과 협조를 당부하며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짤막하면서도 간결한 취임 사를통해자신감을보이기도했다. /박현숙명예기자(경남진주시지부) 밀성박씨 아당공 이하 9위 선조 시향 봉 행 신임회장해원부회장추대븣定總성료 물언재 제관 왼쪽부터 용권(찬창), 해원 초헌관, 정식 종헌관, 맹제 종헌관, 응상 집례, 효근축관 順 박응상이임회장 박해원신임회장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