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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면(昌寧那編) 고 숙종때 승의랑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묘산아래에 집을 짓고 살면서 추 모의 한평생을 마쳤다.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경성재가 있다. 연고지 - 대합 (월계) 2) 烈 女 • 朴 民 l채安禮奏 王亂夫遇戰將 被害 朴e;;負兒雄身 /닫願同死事聞雄聞 본관 밀양 장사랑 성안례의 아내이다. 임진왜란 때 적이 남편을 죽이려 하 자 붐으로 남편을 숨기다가 같이 죽었다. 정려 되었다. 정려비 - (성산 정녕) • 양녀 박소사 (良女 朴 검史) 良A 金成칼 奏 與夫採흙同船 而歸中流와覆 夫쫓同懶出而視 則其夫國 而不出隨뼈號哭 郞還投水中抱옳而死 事聞雄聞 聞在合山행 양인 김계운의 아내이다 300여 년 전 대합면 합산리에 가난하게 살았다. 어떤 추운겨울 부처가 같이 낙동강을 건너 (이방면 장천리 하포 맞은편) 나 무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강을 건너다 풍랑으로 배가 전복되어 물에 빠 졌다. 박씨는 요행이 살아났으나 남편은 생사를 알 수 없어 사람들과 함께 온 갖 애를 다 써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며칠 동안 남편의 시체를 찾으려고 애 쓰던 박씨는 통탄하며 발버둥 치다가 마침내 막막한 물속으로 뛰어들어 남편 의 뒤를 따랐다. 다음날 박씨는 남편의 시체를 껴안고 물위에 떠올랐다. 세상 사람들이 이에 놀라 〈불속에서 포부귀천(抱夫歸天)하였음은 그 정녀에 하늘 이 감동한 것이라〉 하였다. 이 일이 알려져 정문이 합산에 세워졌는데 그 후 손이 없었으므로 관급한 비용으로 원근의 유림측에서 제사를 지내왔다. 왜정 때 합산리 일대가 왜군 연습지가 되자 이방면 등림리 죽전마을 앞으로 이전 4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