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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샤 재 (永 思 蕭) 口밀성박씨 口소재지 : 창녕군 계성면 광개리 t섭 。} E르 E그 장녕군편(릅寧폐網) 密城朴~ 판도(版圖) 판각공파(判聞公派) 譯 천익 조(天翊 祖)의 예손(홉孫) 인 돈재(돈顆) 諸 세화 조(世華 祖)의 셋째 아들 석천公이 조상이 되니 지나 간 계묘년에 후손인 운용, 민용, 서용, 태술 등이 여러 일가들과 뜻을 합하여 정성과 힘을 다해 돈용을 위하여 영모재를 짓고, 정미년에 석옹을 위하여 영 사재(永思顆)를 건립하였다. 내가 영산의 산수가 장하다는 것을 일찍이 들었 노라. 사는 곳이 누추한 곳이라 항상 눈으로 보는데 미치지 못하여 한을 하더 니 무오년 봄에 영산의 계성에 사인(士人) 박군 화식이 멀리 오·육백리를 달 려와 골짜기의 집에 찾아와서 이르기를 우리성이기에 살게 된 것은 나의 8대 할아버지 돈재公으로부터 비롯하였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후손들은 약230호 가 되며 사회적으로나 문중에 공헌한 인물들은 많다. 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