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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 경L남문화유적록 추 모 재 (追 暴 蕭) 口 경주박씨 口 소재지 . 힘안군 군북면 명관리 명동 신라(新羅) 삼 대(三代) 유리왕 (f需理王)의 이자 (二子)요 오대왕 (五代王)인 파사 왕(婆쏠王)에 육 대(六代) 휘(譯) 제싱-(뿔上)은 호 (號)는 관설당(觀 雪堂)이요 충렬공 (忠烈公)으로 박성(朴姓) 혈통(血統)으로는 영해박씨(寧海朴民)로 분관(分實)되 어오고 있으며 당시에는 양산에 지방관으로 있었으나 19대 눌지왕의 부름을 받고 가니 왕(王)의 동생 복호와 미사혼이 왜국에 볼모를 가서 돌아오지 못하 고 있으니 구출할 것을 명하여 고구려에 간 복호는 무사히 귀국케 하고 일본 에 간 미사혼은 밀선으로 귀국시키니 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왕께 처참히 순 국당하게 되어 미사혼은 그 은혜 보답으로 자기딸과 혼인하게 하여 외손자가 소지왕이 되어 신라 왕통이 계승되기도 하였다. 그의 후예(後홉)요 시조(始祖) 의 41대(代) 앙 조(盡 祖)께서는 단종(端宗)임금 비통함을 보고는 벼슬을 버 리고 영남 함안 고을에 낙향하여 우리 경주박씨(慶州朴民) 관조(實祖)가 되시 어 세거(世居)하게 되었고 후손(後孫)들은 오현선조(五賢先祖)의 무멈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에 재실(짧室)을 세우고 추모재(追幕齊)라 편액(扁願)하고 경주 박씨 (慶州朴民) 총본산이 다 . • c 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