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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경남문화유적록 단종 복위에 모의하여 死六톰과 함께 강원도 영월 훨節끼리에 配享되었다. 그 7세손 譯 武成은 成均館 진사로 조선조 己때士網 때에 피신하기 위해 합천군 삼가면 阿草리로 입향하였다. 그 증손 譯 仁壽는 대의면 평촌으로 옮겼으며 그 13세손이 朴基準이며(본인 제출 자료) 후손들이 삼가면 내와 대의면 내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6) 高靈朴R 입향 고양대군 언성(彦成) 24세손 朴還께서 합천군 봉산변 김봉리 거안에서 1755년경에 의령군 궁류면 운계리 어촌으로 이주하여 대대로 번창하고 화목 하게 살아 가다가 산업사회에 즈음하여 경향 각지로 흩어져 살고 있으며 약 50여 호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면서 정답게 살고 있음. 7) 灌南朴民 澤南公派 입 향 譯 인수(職壽 : 시조 혁거세 대왕 40세손)는 고려조 병마사를 역임, 나주 반남에 살았다. 그의 증손(43세손)인 應珠는 고려조 戶長을 지내고 반남 호족의 후예 로 實祖인 것이다 그의 6세손 朴룹은(尙表의 子, 字 M止) 문과에 급제, 조선조 초기 왕자의 난 때 太宗을 도와 推忠舊義翊載 住命功멀으로 좌의정에 오르고 반남君에 봉해지다. 그 후 鎬川府院君에 進封되었으며 본관을 반남으로 世系 를 이어오고 있다. 의령 입향은 13세손 元周(생몰 연대 미상)가 의령 무하동이 세거지가 되었다고 한다.(의령군지 p1967~8 박씨문헌록 하) 조선 명종 17(임술)년 으로 1562년 전후로 추정된다. 문중에 孝佛로 출중한 朴雲參이 있으며 무하 (英下)에 30여 호가 숭조 돈목하고 있다. (박춘석 제출、 자료) . () 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