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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편(宜寧페編) 彦沈의 후손인 朴彦¥를 증조로 한 후예이다. 송은공의 넷째 아들인 증 이조 참판 쐐堂 朴廳(졸당파조)이 공의 6대조이다 충청 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합 천 삼가로부터 처가인 의령 가례로 옮겨와 살았다. 퇴휴헌은 해남 현감을 지 냈으며 임진왜란을 당하여 본 고을의 군수가 고을을 지키지 못하고 달아나 버리자 같은 고을 사람인 초정 강언룡 등과 獅射堂에 모여 고을의 민심을 다 스리는 한편 고을 사람으로 편성된 민병과 집안의 가솔을 거느리고 남강을 건너 진주성으로 진격하려는 왜군을 정호진에서 맞아 싸워 크게 승리하였다. 당시에 고금정에서 의병장들과 삽혈동맹시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후 창녕 화왕산 전투에서도 전공을 세워 선무의 공적을 남겼다. 기유년(1608)에 평양 우후로 등용 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과 권기의 전횡에 실망하여 관직을 버리 고 고향으로 내려와 고금정에 올라 거문고를 타고 지방의 유학자들과 종유하 며 73세로 세상을 마쳤다. 지금도 이곳 의령에는 많은 후손들이 산재하고 있 으며 입향조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4) 密城朴R 左僅射公後 氣堂公派 입 향 始祖王의 29世孫 景明王의 아흡 아드님이 각각 分派할 때 큰아들 ‘彦沈’이 密城大君에 봉해지므로 본관을 密城으로 하여 주류를 이루고 있다. 中始祖 譯 ‘彦仁’(37세)은 127~ 中祖 중 셋째 집으로 좌복야공에 봉하고 45세손 휘 ‘흥 생’ 號 ‘衛堂’이나 밀성박씨 派祖로 하여 氣堂公派의 起一世 하였다. 七世孫 譯 ‘尙成’께서 1579년경(약430년 전)에 忠淸道 永同에서 華井 德、橋 魚隱洞으로 移居하여 지금 21세(시조 왕 65세)를 누려오면서 通政大夫 工團熱判 折忠將軍 中樞院 慶官 등을 배출하였으며 또한 조상의 은덕을 기라고 일가간의 우의를 다지며 宜寧, 륨州, 金海, 옳山 등지로 산재하여 약 50여 호로 살고 있다. 5) 密城朴R 쇄正公派 입 향 신라 시조대왕의 30세손인 밀성대군 譯 彦沈 實祖의 15세손 譯 鉉 규정공 은 중조이시다. 그 6세손 韓 審問淸顆公 派祖는 官이 예조정랑으로 조선조 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