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page

C양상시 편(梁山市編) 朴 文 良 (박 문 량) (선락(善樂) : 音樂을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 세칭(世稱) 백결선생(百結先生)이다. 신라(新羅) 자비(孫悲)왕(王) 시(時)의 사람이며, 가정(家健)이 극빈(極負)하여 입은 옷을 백(百)군데나 꿰댔다하여 호(號)를 백결(百結)이라 하였다. 항상 거문고로써 자적(自適)하며 희노애락(喜恐哀樂)이 있으면 반드시 거문 고에 붙여 그 뜻을 펴고 있었다. 어느 세모(歲흉)에 인가(憐家) 방앗간에서 곡 식을 찔고 있었는데. 기처(其쫓)가 방아 쩔는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남은 모 두 곡식을 쩔는데 우리만 홀로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으로써 세모(歲幕)를 보 낼꼬’ 하니 선생(先生)이 탄식(曉息)하여 가로되 ‘사생(死生)이 명(命)이 있고 부귀(富貴)가 하늘에 있나니, 그대는 무엇 때문에 상심(傷心)하느냐’하고 이에 거문고를 타서 방아소리를 내어 그 아내를 위로(愚勞)하니 세상(世上)에서 전 (傳)하기를 善樂이라 하였다. (동국(東國)인물총기(人物輩記)) 삽양주인(歡良州人) 박 제상(朴 提上)의 자(子) 문량(文良)은 자비왕(孫悲王) 을 섬길 적에 재이(“異)로 인(因)하여 상서(上書)하는 글에 이르되 대저 천도 (天道)는 말없이 운행(運行)하여 사람을 교화(敎化)시키는 고(故)로 하늘은 재 앙(“뺏)으로써 군심(君心)을 경계(警械)하기를 ‘스승이 선(善)을 가르침에 허 물을 찾아 형별로 꾸짖어 엄(嚴)히 선(善)에 인도(련|導)하려는 것과 같다. 그 러므로 군주(君主)가 만약 천계(天誠)에 경각(警覺)하여 정도(正道)에 마음을 돌이킨 즉 이는 천재(天“)를 보고 다시 인복(人福)을 개장(開張)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기후(其後)에도 누누(盧塵) 진언(進言)하였더니 당로(當路) 대신(大톰)들의 미워하는 바를 만나 벼슬을 버리고 향리(獅里)에 돌아갔다. 이때는 민속(民倚) 이 거개(뿔皆)가 봉분(封樓)을 모시지 않고 장례를 치렀는데, 홀로 그리하지 않고 말하기를 ‘아가(我家)의 봉록(棒雄)은 선열(先烈)의 분묘(境基)치봉(治封) 하는데 다 썼다.’하고는 거가(居家)함에 극빈(極負)하여 옷은 항상 백결(百結) 이었으며, 사람됨이 영리(營利)를 좋아하지 않고, 항상 거문고로써 자적(自適) 309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