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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양시 편(密l場市樞) 효자 봉훈랑 이 산군사 박주지 려 (孝子 奉밟11郞 以山都事 朴 뿜之聞) 口밀성박시 口소재지 :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팔방동 이 효자려(孝子聞)는 모와(幕홉) 박주(朴 뿜 ) 공의 순효(純孝)를 표 창하기 위하여 나라에 서 1609년(광해 1, 기 유)에 명정(命施)되고 1710년(숙종 36, 경 인) 에 그가 살았던 창녕 부독(쏠씁)에 세웠는 데, 1903년(고종 40, 계묘)에 실화(失火)로 소진된 후, 1909년(순종 3, 기유)에 후손들의 청원에 의하 여 이곳으로 이건한 정문(族門)이다. 1979년(기미)에 정부의 보조금으로 중수 하였다. 모와공(幕홉公) 박주(朴뿜, 1546-1604)는 송은(松隱)선생의 7세손이며, 통찬(通贊) 문손(文孫)의 현손이요, 1498년(연산 4) 무오사화(밟午士神)에 함양 으로 피한 지평(持平) 밀(密)의 손자이자, 창녕 부곡(쏠감)으로 이사하여 살았 던 정자(正字) 숭례(뿔禮)의 아들이다. 21세에 등제(登第)하여 임천(林川), 이 산군사(以山郵事, 理山那守)를 지냈다. 어릴 때부터 성효(誠孝)가 독실하고 양 친 상을 당하여 여묘(盧基) 6년 중에 밤마다 범이 와서 호위하였으며, 매 열 홀에 어머니께 문안하려 귀가할 때면 뱃사공이 노를 잡고 대기하였다. 별세한 뒤 원근의 사림(士林)이 정문(程文)하여 순효(純孝)로 명정(命雄)되고, 그 9세 손 사일(思-) 사복(思福) 등이 순조 연간에 이곳으로 환고(還故)하자 정려를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2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