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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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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비는 창원 박씨 랑장 충민의 여요 또 고흥 유씨는 판결사 인기의 여다. 모두 정경부인에 증직하다. 넷 아들을 두니 융과 소와 조와 총이니 총은 공의 휘다. 공은 날때부터 연민함이 사람에 뛰어났고 장성하여 세분 형을 따라 포은 정선생의 문하에서 배워 크게 선생의 칭찬을 받으니 당시에 네 마리 용이라는 일커럼이 있었다. 더불어 변춘정 계량 성독곡 석린과 벗하였으며 유일로 번갈아 천거되여 정랑벼슬에 제수 받았으나 공은 벼슬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오래 머무르지 아니하였으면 만년에 밀양으로부터 삼가 대평리에 이사하여 살았으니 대개 그 땅의 깊숙함을 사랑함이니라. 삼산이 높고 높아 그 가운데 한 적은 뫼뿌리가 꿈틀거려 용과 같이 서리기로 즐길만 하기에 조그만한 정자를 짓고 지내면서 추자의 시에 옥온산사(玉蘊山舍)의 뜻을 취하여 옥산정이라 이름하니 지금도 늙은 나무가 둘러썻고 공의 자손 여덟사람이 일직 여기에 인명부를 걸었음으로 또 팔인정이라고도 하여 읍주지에 실려있다. 공이 계사년 유월 이십사일에 나고 기미년 이월 이일에 죽으니 수는 팔십칠이다. 특별히 이조참판을 증직하였음은 특이한 일이다. 이조 순조 기해년에 많은 선비들이 단성 신계서원에 배향하고 제사를 받든다. 배위 동래정씨의 묘는 실묘되고 후배 강양이씨는 태자첨사공 실의 여요 강양군 약의 손녀다. 묘는 공묘의 뒤에 있다. 이남 이녀를 생하니 장남 승문은 음직으로 정랑이요 가선대부 동지중추에 오르고 차남 희문은 현감이요 사위는 강위성과 이석주인데 석주는 훈도다. 중추의 남사림은 음직 찰방이요 서림은 주부이요 유림은 습독이요 사위는 문경충이다. 현감의 남 세림은 현감이요 언림은 판사요 계림은 통찬이요 사위 김헌은 대제학이다. 증손 현손 이하는 가장에 상세하게 기록 되어있다. 장하도다 공은 대대 화벌로 안으로는 부형의 가르침을 이었고 밖으로 사우의 힘을 힘어 재주가 높고 바탕이 아름답고 학식이 넓고 행실이 돈독하여 구차히 부귀를 마음먹지 아니하였은즉 금문옥서가그 분수안에 있고 머리를 명리에서 들이켜 마침내 임천에서 늙으니 슬프다. 포은이 죽었으니 비록 벼슬하고자 하여도 그 누구에게 의지하여 돌아가랴. 이것이 공의 당호을 졸한것으로 하여 당세의 드러남을 구하지 아니함인가 하노라. 이것으로써 명을 하여 이르대 사람들이 모두 아리따움을 하고저하나 나는 홀로 졸함을 지켰도다. 졸함을 지킴이 어떡한고 살아갈 뿐이록다. 임금과 스승이 일체가되니 가히 벼슬도하고 가히 아니할수도있다. 그 자취 은미(隱微)하니 뉘라서 이 뜻을 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