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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 제작배경 :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용기를 내어 일본군 위안부 이었음을 밝힌 이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의 수요집회 1000회(20년)를 맞이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울산대공원 앞에 소녀상을 제작하여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 조각상 설명 한복 입는 소녀상 : 할머님들은 1992년부터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스스로 밝히며 일본 침략 전쟁의 잔혹함과 어린 소녀들을 성 노에로 전락시킨 뻔뻔함을 만천하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이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억울한 사연이라고만 생각햇지 한국의 어린 소녀들에게 몹쓸 짓을 하엿다는 것을 잘 인지를 못하였었습니다. 이것은 할머니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정부가 조직적으로 성폭력과 폭력을 자행하였다는 것을 일깨우고, 이를 일본 대사관이 직시하도록 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끌려갔을 당시의 한복 입은 13~15세 정도으 소녀의 모습으로 형상화 한 것입니다. 〈할머니의 그림자〉 조각의 모습은 소녀의 형상인데 소녀의 그림자는 할머니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지금 현재 할머님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그 사람(소녀)의 그 그림자(할머니)인데 소녀와 할머니가 다른 사람일까요? 결국 같은 사람인데 기나긴 시간이 흘러 소녀가 할머니가 된 것이지요! 사과 반성 한 번 없고 지나온 시절 할머니들의 원망과 한이 어린 시간의 그림자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신 길원옥 할머님의 말씀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본을 다 준대도 용서할 수 잇을까? 내 인생 돌려도!" 무엇으로도 가슴 속에 묻고 살아온 인생의 할머님을 무엇으로도 해결될 것은 없습니다. 〈할머니의 그림자 속의 하얀 나비〉 그 할머니의 그림자 모습 중에 가슴 부위에는 하얀 나비가 있습니다. 많은 할머님들이 연세가 드시면서 한 분 한 분 세상을 더나셨습니다. 일본 정부의 사죄 한마디를 기다리며 눈비 맞아가며 수요시위를 지켜오셨는데 그 원망과 서러움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보통 나비의 상징적 의미가 환생을 뜻합니다. 부디 나비로라도 환생하셔서 살아서 원하시던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할머니 그림자 가운데 하얀 나비를 새겨 넣었습니다. 〈뜯겨진 머리카락〉 당시 조선 소녀의 머리카락은 댕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닏. 특히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분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짧게 자르지 않았었습닏. 그런데 조각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머리카락이 거칠게 뜯겨진 듯 잘려진 모습입니다. 이는 낳아주신 부모와 내가 자란 고향을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억지로 단절된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맨발〉 소녀의 발은 맨발입니다. 순수한 소녀의 발은 전쟁이 끝났지만 몇몇은 돌아오지 못하고 또 몇몇은 조선 땅에 돌아와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내가 지은 죄가 아닌데 못할 짓을 한 것처럼 할머님들은 죄지은 마음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92년 할머님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우리 할머님들의 가슴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내나라 국민의 억울함을 이토록 방치하고 이 정부는 이 국가는 내나라 국민을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린 작은 소녀를 지켜주질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내 나라의 불편함으 조각가는 맨발 모습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새〉 새의 의미는 보통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니다. 미술이나 문학 영화 등 많은 예술 작품에서 주로 사용하는 상징적 동물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뜻도 내재되어 있기도 합니다만 한가지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땅에 앉기도 하는 새는 산 사람과 돌아가신 사람을 영적으로 연결해주는 영매의 의미를 가지고도 있습니다. 즉 하늘은 돌아가신 사삼들의 공간이며 땅은 현실에 있는 사람이고 이를 오가는 새가 영매의 역할인 것입니다. 하여 비록 지금은 돌아가시긴 햇지만 마음만은 현실에 있는 할머님들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빈 의자〉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연로하신 탓에 일본 정부의 그릇됨을 고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세상을 먼저 떠나가신 할머님들의 빈 자리를 쓸쓸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곳 일본 대사관을 찾는 사람들이 이 소녀상을 보고 소녀상 조각 옆의 빈 의자에 나란히 같이 앉아 그 당시 어릴 적의 소녀의 심정을 생각해 보고 현재의 할머님들의 외침을 함께 느껴 볼 수 있게 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