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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아. 같은 과 동기. 이상하게 끌리던 친구였다. 그래서 결국 송국으로 꼬셨다. 딱적성에맞는그런친구였다. 본인은콤플렉스라고했지만, 자연스런웨이브머리가 참 매력적이었다. 근데 사실은 이 친구가 쓴 글이 더더욱 매력적이었던 건 나중에 알 았다. 정은경. 정말 웃음이 떠나지 않는, 늘 웃고, 웃고, 먹고, 먹고. 작은 체구였지만, 먹 는 자리에는 꼭 있었다. 우석이랑 같은 하숙집이었나, 방송국에 웃음소리로 기억되는 사람중에한명이다. 보도 김준용. 작은 헛과시. 늘 구석에서 폼 잡고 있지만, 늘 다른 동기들을 위해 애쓰는 너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 찾아온 것도 다 기억난다. 체구는 작지만, 그래도 ROTC 제복은멋있었다. 기지바지보단~. 김창종. 충청도 촌놈. 근데 지금은 뉴욕커. 웃겨 정말. 아마 우리 동기 중에 실무진 생활을 제일 많이 한 걸로 기억된다. 부서 복인가? 아마 책임감이 그렇게 만들었겠지. 인도여행을간다고했을때부터멋지다고생각했었다. 정창근. 떡대 최고~. 키도 크고 얼굴도 시원시원한 여러 가지로 쾌남형이었다. 물 론 성향대로 방송국 생활은 오래하진 않았지만, 선배들한테도 그리 꿀리지 않는 그런 대장부같은스타일이었다. 1992년의 너희들을 언제 다시 만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 대학생활 에 전부였던 송국에서 같이 생활했던 너희들이 늘 그립다는 거다. 그때 내가 좀 더 성 숙했더라면, 그때내가좀더알고있었더라면, 이런후회를하면서말이야. 지금은 다들 각자 자기 일하면서 생활하고 있겠지만, 내 기억 속에 1992년 40기는 아직내머리와마음속에서잘지내고있다. 우리행복하자. 기별 Essay | 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