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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남형도의식있는기자로애교가넘쳤다. 기술실(당시 엔지니어실)에는 기계를 다루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언니가 있어서 각 별한 보호를 받았지만, 오히려 다정다감하고 엄마와 같은 넓은 품을 지녀서 28기 전체 를 안아 주던‘인간 김지애’언니. 결국 같은 기술실의 마음 따뜻하고 눈웃음을 잘 짓 는 웅이 형(김웅)과결혼! 그것도학교재학중에, 놀랍고도부러웠던커플이었다. 언제 나 점잖고 느긋하던 양반풍의 김형민 형,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있는 기술자 조수찬 형 이기술실의멤버였다. 봄철엔 퐁퐁파티에 선배들을 위한 상차림도 준비하고. 늦은 가을 방송제를 위해 팸플릿 광고를 지원 받으러 다녀보기도 했고.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안 되는 머 리를 쥐어짜며 네 개의 부서가 방송제를 위해 협조하고 양보하기도 하고, 또 경쟁도 하면서 방송제를 마치면 한해가 갔다. 겨울방학이나 여름방학에는 MT도 함깨 갔다. 학과친구들사이에서는아웃사이더와도같이삶의축은늘방송국에있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방송국 칠판 가득 녹음 약속들이 적혀 있고, LP판 재킷과 함께 테이블에놓인언중지서가소통의공간이되었다. 당시는 LP를 사용하여 음악과 효과음을 틀었던 시절이라 연중행사로 낡아진 음반 재킷을 테이프로 수리하고, 음반에 낀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하이타이로 음반을 깨끗 이 씻어 내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음반을 분류하고 라벨을 붙이고, 가끔 음반을 잘못 잡 아 손의 지문이 닿으면 선배들로부터 가차 없는 야단을 맞았었다. 그런 중에도 공강 시간이나 한적한 토요일, 학교가 텅 빈 느낌 속에서 나름 분위기 잡으며 음반을 틀어 놓고 언중지서를 들춰보며, 요즘말로 댓글을 달던 낭만이 있었다. 방송국 앞 계단 에…, 이어지는숲길속에그런추억이그득했다. 회식, 방송국 생활의 낭만을 최고로 만들어준 추억은 뭐니 뭐니 해도 학교 앞‘해 바라기’의 라면이었다. 아직도 해바라기만큼 맛있게 라면을 끓여주는 집을 찾지는 못 했다. 분식집을 하루가 멀다하고 다니다보니 당연하게 이모집이라고 부를 수밖에. 아 침에 등교할 때면 밤새 프로그램 만들거나 술을 마시고 방송국 녹음실에서 잠을 잔 동 기별 Essay | 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