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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뉴스 때문에 아침 일찍 등교를 하던 길이었는데, 광화문 쪽에는 탱크 도보였다. 1961년 5.16군사 쿠데타가 터진 것이다. 모든 방송은 혁명 공약과 행진곡만 흘러 나왔고,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VUNC)에서만 장면 정권을 합법 민주정부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우리 VOU에서는 하루 종일 이 방송을 내보냈다. 그때 학교에 모여든 모든 학생들은 우리 VOU 방송을 듣기 위해 운집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 방송이 VOU의 의사는 아니라는 멘트도 곁들이며 방송 매체의 중립성을 제법 갖추는 척하면서 유엔 군방송만내보낸자긍심을아직도간직하고있다. 전력 사정이 여의치 못해 조회나 행사 때마다 그 무거운 발전기, 배터리, 마이크 등 을 리어카에 싣고 낑낑거리며 이동할 때는 등 뒤로 여학생들의 미묘한 시선을 의식하 면서뇌까렸다. “내가이렬려고VOU에들어왔나.” 그러나 KBS 주최 대학 방송극 경연대회에 연속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연극부 와 협조하여 방송 프로그램에 입체낭독과 방송극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 당시 아나 운서가 전부 북치고 장구까지 쳤지만, 아나운서만 뽑지 않고 성우 부문도 모집했던 것 이지금처럼여러부문의전문성을갖춘방송요원모집의모태가되지않았나싶다. 방송 핑계로 몇몇이 작당하여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스튜디오에서 자다가 아침 방송하러 일찍 나온 여학생이 기겁했던 일, 라디오 겸용 녹음기가 방송 시작 직전까지 고장 난것을 수리하지 못한 홧김에 그 녹음기를 주먹으로 힘껏 내려쳤더니 기적처럼 돌아가며 고쳐져 무사히 방송을 마친 일, 그 외에도 VOU 60년에 얼마나 많은 일들과 사건들이명멸했을까. 그러나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VOU 가족이라면 그 모든 일 들이변함없이공통분모로공유될것이다. 왜냐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는 영원한 VOU 가족이니까. 그 보고 싶 은얼굴들…. 기별 Essay | 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