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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꽃미남VJ를기대했던것같다. 결과가 어찌 되었건 김홍미와 류태호 형을 중심으로 모니터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47기 신현주가 뒤늦게 나타나 매우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하였 다. 자기가심사에참여하였다면반드시탈락시켰을것이라고바로앞에서말하였다. 44기 김용덕 형 또한 이런 실력도 없는 친구가 들어와서 방송이 제대로 만들어질 지의문이라며항상등을보이고편집기만바라보고있었다. 류태호형은어차피선발 되었으니그냥잘가리키자고주장하였다. 방송국에 들어온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지만 이런 정리되지 못한 내부 사정에 대 해서불쾌했다. 당시만해도대학방송국피디라고해도일반지상파피디처럼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김홍미가 중간에 방송국에서 탈퇴하면서 믿고 있던 나 의방어막이완전무너지고사파리속에던져진기분이들었다. 피디들마다서로나를 맡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답답한 시간이 가던 순간에 47기 신현주 언니가 담당으로 정 해졌다. 그때부터 체계적인 방송 콘텐츠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VJ 쪽 선배가 없다 보니피디가교육과제작모두를맡아서직행하게되었다. 수업이없는시간이면교내 를 돌아다니며 촬영 후에 모니터가 진행되었다.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나 오면서 아나운싱 교육도 일시적으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작품을 하나하 나만들었지만당시온라인영상채널이완성되지못하여공개는끝내하지못했다. 2002년 8월, 내가 졸업을 하게 되면서 같이 선발된 48기 신수임은 49기 후배들과 함께방송을하였다. 위에언급한피디들도함께졸업을맞이하게되었는데그과정에 서 업무 공백이 심하게 벌어지게 되어 혼선이 일부 있었다. 42기 류태호 선배가 석사 과정까지 하면서 방송국 조교로써 활동하며 지원 사격을 해주었고, 44기 서두범 형이 방송 채널 구축 및 기틀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영상 부서가 자리 잡기까지 38기 김영 돈, 조진탁, 39기 손정민, 47기 권선경, 47기 신현주, 현혁 등이 중심이 되었다. 졸업하 면서가장미안하게생각하였던49기과50기후배들에게감사할뿐이다. 114 | 대학의 소리 방송국 - VOU 6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