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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생 OB가 되어 있었다. 이후 졸업하고도 간간히 모임, 행사를 통해 찾긴 했지만, 사실 이미 떠나 있던 시절이 머물렀던 시절의 두 배가 넘는 시간임에도 아직까지 당시 의 기억이 무릇 다른 기억보다 애틋하고, 맺었던 인연들이 상대적으로 끈끈하게 유지 되는이유가무엇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1학년 수습 시절, 제작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LP 선곡을 하던 중(엔지니어의판옮김과같이PD들의기술겨루기의한종류로사실은불과그며칠전OB 강 습 중 38기 진탁 형의 시전이 멋있어 보여서 흉내 내던 중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레 코드 커버에 쓰여 있던 문구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억 깊숙이 남아있다. 아마도 박준하의 1집 앨범이었던 걸로 기억하며, 워딩은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내 심 장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보낸 이곳에 이것을 남긴다”는 뉘앙스의 내용이었던 것으 로 기억한다. 기증자는 지금은 미국에 계신 여정 언니였던 것 같다. 당시에도 또 지금 생각에도 그렇고 이 말이 내가, 또 많은 선후배등이 송국과의 인연의 끈을 쉬이 놓지 못하는큰이유가아닐까싶다(그래서나도앨범을하나기증했었다. U2의WAR. 전쟁같은 송국생활은아니었을것이다). 3년 전 늦깎이 결혼을 하고, 매우 건장하고 요즘 들어 기계를 매우 잘 다뤄 기계공 학과를 보내야 하나 고민되는 16개월 된 딸을 케어하면서, 예전보다는 송국 모임 등 활동에 소홀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최근 후배의 조사가 있어 조금 먼 곳까지 방 문할일이있었다. 홀로급하게방문한타지의장례식장에조금은낯설고뻘쭘한기분 을 느끼며 홀로 앉아 있던 중, 갑자기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대석 형, 수습 시절 국장이었던 41기 오대석 형이었다. 기억으론 약 10여년 만에 보는 셈이었 다. 매우 반가운 한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공연 준비 중이라는 형은 수염을 길러 서인지 약간은 까칠해 보이기는 했지만, 인사치레로“예전 그대로시네요”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다. 너무도,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어느 날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그날도 여느 송국 모임이 있어 학교 앞 호프집에서 선후배들이 모두 모여 만취 를 향해 달리고 있을 무렵, 군에 입대했던 형이 기별도 없이 깜짝 등장했던 그때 그 모 110 | 대학의 소리 방송국 - VOU 6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