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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망온 것이나、죠픔도 상하게 해서쓴 않펀다,고 했고、 축으며」셔, 죠그 n 도 신체흘 상하자 않았음을 확이」랴,랴는 것이었다 。 이젓이 후세에 젠하여 신체,를 깨끗하게 표존하는 것은 효(孝)의 시작이랴쓴 샤샤。 이 되여석다 。 @소닝--(뽕 X) 와 허。π( 씀’머)까 가산(箕·내)------“요업픔이 허유의 어치g- 은 듣고 천랴,(£下)흘 허유에게 션양(種讓)하 려고 하자、 허。뉴느」 이흘 져캘하고 키,산(箕 l 버)에 들어!까 숨어 살았다 。 그뒤 요엄음이 허。π 에게 천하플 말 지 안겠다연、 유쥬(九州)의 장(흉)이랴도 앓아달랴고 하고 임명하려 했는데、 허。π 까 이 말을 튿고는 더러 。 τ말을 들었다 하변써, 영슈(頻·水)에 냐까셔 귀흘 씻고 있였다。 소뷰(뽕 X) 또한 、당대의 은샤(應士)효써, 기산(箕 1 버)에 숨어쌀연써, 세간의 여。리를 멀리했고、 늙어셔는 냐뮤위에 ψ一융자리플 짓고 쌀았다 하여 쇼부 랴 했다 。 이 쇼부까 소에게 괄。닫 먹이려고 A 」를 몰고 여。슈(頻水)에 냐왔다까、 허。π 까 쉬흘 씻고 있음을 닝‘一고 그 이。π 흘 융었다 。 허。π 까 요이。그 D 에게 드져, 못하--딸을 들었으나 ‘위까 더러워져서 귀흘 씻는다고 대 당하나、 쇼뷰느」 그 、뎌러。 τ 말을 좋였느「뎌려。τ 귀흘 씻었는 여。슈는 쇼도 먹얼슈 없다하고 A 」를닫 요걷고 그‘나。 흘、약까 버렸다 한다。 따랴서 뜻이 높고 치,죠흘 지킨 ‘사랑의 대표젝인 인뭘로 지치。되고 있다。 @져。경부이」(멍敬夫 λ) ”외며。부(外命綠)의 과‘작(‘강융합) 。 져。 -풍이냐 죠。 -풍의 죠。천(‘宗‘親) 및 윤DT 관(、 X武당)의 아내 에게 윤 보。작(封뿔) 。 @처 n 필채1( 사때畢챔) ” -띤도 --年(세종十도 )t 一맥九--年(‘서。죠。二十三) 。 자(字)는 계온(추 B 따)、 이,료 g- 」 갱종직(金宗·훌)、 호(號)까 점펄새(사띠畢쩍)이다。 본관은 서 ι 산(g 옴山)、 성리학의 대까(大家)호 여。냥하「파의 죠。、사(‘宗뼈)아다 。 벼, 슬은 혀。조참파」(쩌옳티쫓判)、 시호(짧號)느 L D 윷낳고。(‘ X$상) 。 @도산선생(삐찌’벼·先싸*{) “이황(李溫)을 망하디 。 이황(李잖)은 -五 0--年(연산七 )l -五七O年(션죠 三)。 자( ‘ 字)는 ‘경호 (붉浩)、 호(號)는 퇴계(退 i 종)、 도옹(뻐싸쩌)、 되용(‘退싸쩌)、 쳐。랴。산인(淸첸’내’ A) 。 본관은 치」닝‘}(훌寶)、 도산(島 l 버 )에 살았다。 벼슬은 대제학、 。 T 찬성 드 g- 걷 지냈다 。 쥬샤학(朱子댈)을 정대셔。한 、겨。 π( 巨潤)료 여。냥하「파의 종 、사(·宗師)이고 시효논 윤숭고。(、 X純상)、 윤요(、 X 願)와 서」요(‘흐願)에 배향되었다, 。 @선nT 일등공신(흐·武 -等功많) “『션뮤워」종일등공신(흐·武原從 -等功토)』의 착요이며、 이하는 요듀 션뮤워초。고。시、、이디 을 강안하여 읽어, 쥬설 것 。 @창의(띔義) ”유「까의 벼」란에 그」와。(勳조)의 의벼。(義兵)을 얼으‘켜셔 싸。 T 는 것으호 임진왜란은 창의하、역 싸。 τ 의 벼응-를이「 황도。이 대딴허 많았고 황도。 또한 컸던 저、란이였다。 @한강션새。(寒팩先生) ” -五맥도年(중종三十 λ)l 一 ‘; 二 O年(과。해칸十-一)。 자(추)는 도까(펄可)、 이흠은 져。우(鄭펙 )、 호까 한가。이다。 기디괴。펼의 외증손으로 요건(。夫健)、 죠삭(옮티植)、 이황(李流)에게 슈학했다 。 참봉、 죠뷰、 현가 O 등에 임명되었£냐、 취임하지 않다까、 -五八 O年에 바로쇼 창녕현감에 뷰임하고 션쟁을 베플여,서 新漢훌훌 한@ ”끓 二七 下 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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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받은 것이니, 조금도 상하게 해서는 않된다고 했고, 죽으면서 조금도 신체를 상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후세에 전하여 신체를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은 효(孝)의 시작이라는 사상이 되었다。 ⑪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기산(寞山)…… : 요임금이 허유의 어짐을 듣고 천하(天下)를 허유에게 선양(禪讓)하려고 하자, 허유는 이를 거절하고 기산(算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그뒤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맡지 않겠다면, 구주(九州)의 장(長)이라도 맡아달라고 하고 임명하려 했는데, 허유가 이 말을 듣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 하면서 영수(潁水)에 나가서 귀를 씻고 있었다. 소부(巢父) 또한 당대의 은사(隱士)로서 기산(箕山)에 숨어살면서 세간의 영리를 멀리했고, 늙어서는 나무위에 보금자리를 짓고 살았다 하여 소부라 했다. 이 소부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소를 몰고 영수(潁水)에 나왔다가, 허유가 귀를 씻고 있음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허유가 요임금에게 듣지 못할 말을 들었으니 귀가 더러워져서 귀를 씻는다고 대답하니, 소부는 그 더러운 말을 들었는 더러운 귀를 씻었는 영수는 소도 먹일수 없다하고 소를 몰고 그냥 돌아가 버렸다 한다. 따라서 뜻이 높고 지조를 지킨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로 지칭되고 있다. ⑫ 정경부인(貞敬夫人) : 외명부(外命婦)의 관작(官爵). 정一품이나 종一품의 종친(宗親) 및 문무관(文武官)의 아내에게 준 봉작(封爵). ⑬ 점필재(佔畢齋) : 一四三一年(세종十三)〜ᅳ四九二年(성종二十三). 자(字)는 계온(季昷), 이름은 김종직(金宗直), 호(號)가 점필재(佔畢齋)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성리학의 대가(大家)로 영남학파의 종사(宗師)이다. 벼슬은 형조참판(刑曹參判), 시호(諡號)는 문충공(文忠公). ⑭ 도산선생(陶山先生) : 이황(李滉)을 말함. 이황(李滉)은 一五百一年(연산七)〜一五七十年(선조三). 자(字)는 경호(景浩), 호(號)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옹(退翁), 청량산인(淸凉山人). 본관은 진보(眞寶), 도산(島山)에 살았다. 벼슬은 대제학, 우찬성 등을 지냈다. 주자학(朱子學)을 집대성한 거유(巨儒)로 영남학파의 종사(宗師)이고 시호는 문순공(文純公), 문묘(文廟)와 선묘(宣廟)에 배향되었다. ⑮ 선무일등공신(宣武一 等功臣) :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ᅳ等功臣)』의 착오이며, 이하는 모두 선무원종공신임을 감안하여 읽어 주실 것. ⑯ 창의(倡義) : 국가의 변란에 근왕(勤王)의 의병(義兵)을 일으켜서 싸우는 것으로 임진왜란은 창의하여 싸운 의병들의 활동이 대단히 많았고 활동 또한 컸던 전란이었다. ⑰ 한강선생(寒岡先生) : 一五四三年(중종三十八)〜一六二十年(광해군十二). 자(字)는 도가(道可), 이름은 정구(鄭逑), 호가 한강이다. 김굉필의 외증손으로 오건(吳健), 조식(曹植), 이황(李滉)에게 수학했다. 참봉, 조부, 현감 등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一 五八十年에 비로소 창녕현감에 부임하고 선정을 베풀어서